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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사랑하고 생각을 즐거워 하는 아이들을 기르고 싶은 교육자의 소박한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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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에 해당하는 글 21 개
2011년 05월 24일   블로그를 열면서 (7)
2008년 12월 22일   클라라 하스킬의 특별한 연주 -슈만 (1)
2008년 11월 15일   음악의 신성함에 대하여(1)
2008년 10월 29일   음악에세이 -테초에 소리가 있었다(3)
2008년 10월 23일   음악에세이 -태초에 소리가 있었다(2)
2008년 10월 08일   괴테, 들장미, 그리고 슈베르트와 브람스
2008년 10월 07일   굴드 음반의 복제, 그리고 구제 미학
2008년 10월 05일   음악의발생학 -태초에 소리가 있었다(2)
2008년 09월 28일   글렌 굴드 vs 컴퓨터 (5)
2008년 09월 24일   태초에 소리가 있었다- 음악의 발생학(1)
2008년 09월 23일   음악, 그 존재론적 모순 (2) (2)
2008년 09월 21일   음악, 그 존재론적 모순(1)
2008년 09월 19일   코지판투테를 보는 어린이
2008년 09월 16일   얄미운 천재 미하일 플레트네프 (2)
2008년 09월 12일   하스킬/그뤼미오의 라이벌 커플 해블러/셰링 (1)
2008년 09월 07일   하스킬의 친구들 -그뤼미오 (1)
2008년 09월 03일   하스킬의 친구들. 디누 그 이후....게자 안다 (2)
2008년 08월 28일   지네트 느뵈 (1)
2008년 08월 20일   아도르노 '음악사회학' 중 청취자 유형 (펌글)
2008년 06월 28일   디누가 연주한 쇼팽 협주곡
2008년 06월 18일   디누의 마지막 공연중 쇼팽 왈츠 몇곡


블로그를 열면서
클래식 이야기 | 2011년 05월 24일 17시 57분
디누 리파티가 마지막 공연이었던 브장송 실황녹음중 슈베르트의 즉흥곡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디누 리파티는 거의 반평생을 백혈병과 싸우면서, 병때문에
퉁퉁불은 손가락을 가지고 수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명연주를 남기고 불과 33세에 눈을 감았습니다.

저는 불행히도 디누보다 훨씬 더 오래 살고 있습니다만, 디누의
반의반의반도 세상에 기여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디누이고자 하는 마음을 지키렵니다.

디누의 훌륭한 연주, 그리고 그 외 들려 드리고 싶은 여러 음악과 저의 짧은 사색을 여기에 올려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경고) 디누의 연주는 1950년대 이전의 녹음이라 녹음 상태가 매우 열악합니다. 하지만 그의 포스는 충분히 그 엉망인 녹음을 뚫고 전해옵니다. 때로 그의 연주는 가슴을 후벼파고 영혼을 뒤흔들어 놓습니다.

부득이 광고를 유치한 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음악 스트리밍을 하려다 보니, 음악파일 저장공간이 많이 들어, 이 블로그는 호스팅 공간을 최소 2기가 정도를 요구하며, 트래픽도 많이 필요해서 그 비용이 꽤 부담이 됩니다. 그러나 좋은 음악을 함께 듣고 나누기 위한 작은 불편으로 생각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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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누, 문화, 예술, 음악,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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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logIcon dada 2008년 06월 04일 20시 17분
음악 너무 좋습니다.
이곳에 들르니,
제가 아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무척이나 하얀 분이시죠.^^
앞으로 자주 들릴께요..
좋은 음악 계속 부탁드립니다.
  2008년 06월 15일 23시 26분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2008년 06월 18일 03시 06분
명반 중의 명반이죠.
앞으로도 좋은 음악들 기대합니다.
 침엽수지대 2008년 08월 19일 14시 50분
디누 리파티, 정말 잘 듣고 갑니다.
 BlogIcon 북스토리 2008년 08월 27일 01시 28분
클래식 너무 좋아합니다. 30대에 죽은 음악가가 많은데...
지네트 뉘베도 아름다운 바이올린을 치는 분이었는데
비행기 사고로 30대 초반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천재는 오래 살지 못하나봐요. ㅠㅠ
좋은 블로그 사이트 잘 구경하고 갑니다.
 BlogIcon 디누리빠띠 2008년 09월 11일 18시 30분
아, 촛불 배너가 날아갔어요ㅠㅠ. 빠른 시일내 다시 복구하겠습니다. 절대 절대 제가 촛불을 끈것이 아닙니다.
 발가락 2008년 09월 25일 12시 27분
올려주시는 음악 잘 듣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과 음악 부탁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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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하스킬의 특별한 연주 -슈만
클래식 이야기 | 2008년 12월 22일 12시 17분
슈만의 어린이 정경은 헤맑은 곡이다. 헤맑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곡이다. 여기에 있는 곡들 어느 하나 사랑스럽지 않은 곡들이 없다. 물론 유명하기는 이 중 트로이메라이(꿈)가 가장 유명하지만, 나는 첫번째 곡인 머나먼 나라에서를 가장 좋아한다. 그야말로 꿈의 세계를 향한 아이의 동경이 느껴지는 그런 곡이기 때문이다.

이 곡을 클라라 하스킬이 연주할 경우 그 느낌은 더욱 각별하다. 평생을 고통속에서 살았던 연주자이기에, 그럼에도 그 고통을 물리치며 투명한 경지에 도달한 거장의 연주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하스킬이 연주하는 이 곡은 동경이 아니라 동경 저편에서부터 울리면서, 도리어 우리를 동경에 빠뜨린다.

비교적 평탄한 인생을 살았던 피아니스트인 클리포드 커즌의 연주와 고통속에 살았던 하스킬의 연주를 비교해 보면 두 거장이 같은 곡을 얼마나 다르게 연주하는지 알 수 있다.

먼저 커즌의 연주


다음은 하스킬의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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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만, 어린이의정경, 어린이정경, 예술, 음악, 클라라하스킬, 클래식, 하스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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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12월 25일 10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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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신성함에 대하여(1)
클래식 이야기 | 2008년 11월 15일 17시 41분

  “학문과 예술만이 인간을 신성하게 한다.”

이 폼나는 경구는 베토벤이 평생 주문처럼 읊고 다녔던 말이다. 그는 자신이 예술 활동을 한다는 사실에 대하여 엄청난 자부심을 느끼고 더 나아가서 그것이 다른 어떤 활동보다도 신성한 활동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의 충실한 후원자들 중 한 사람이었던 라조모스키 공작과 말다툼을 한 끝에 “당신은 그저 공작일 뿐이다. 그러나 나는 내 작품이 남아있는 한 영원히 기억 될 것이다.” 라는 선언을 하기까지 했는데, 결과적으로 그 선언은 멋지게 들어맞았다. 라조모스키 공작은 베토벤이라는 존재가 없었더라면 오늘날 그 이름조차 남지 못했을 테니까. 하긴 베토벤의 우상이었던 모차르트는 그 보다 훨씬 어린 나이인 스물넷에 이미 그렇게 말했고, 요즘 식으로 말하면 정규직 일자리를 박차고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몸을 던졌다.

베토벤이 음악에 대해 느끼고 있던 신성함과 외경은 참으로 지고했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우상인 모차르트 역시 이 신성함의 척도를 이용해서 평가했다. 그리하여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의 그 장엄하고 신비롭고 숭고한 정신세계에 깊이 빠져 들었으며, 반면, 모차르트가 자신의 기준으로 볼 때 너무도 세속적인 내용인 ‘돈 지오바니’나 ‘코지 판 투테’ 같은 이야기를 오페라로 작곡했다는 사실에 대해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이토록 신성한 재능을 이토록 하찮은 이야기에 쏟아 붓다니...” 라고 말하면서 그는 모차르트의 돈지오바니를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또 베토벤은 헨델의 오라토리오들을 대단히 좋아했다. 헨델의 오라토리오들의 공통된 주제들을 보면 베토벤이 빠져들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헨델이 즐겨 다루었던 이야기는 온갖 고난과 역경을 위대한 인간성과 숭고한 정신력으로 극복하고 마침내 장엄한 승리를 쟁취하는 그런 종류의 것들이었다. 이것이 베토벤을 깊이 감동시키고 자극해서 유명한 9번 교향곡(합창)에 영감을 주었음은 분명하다. 특히 베토벤은 9번 교향곡을 작곡할 무렵 헨델의 ‘메시아’에 거의 열광하고 있었다. 어찌나 열광했던지 헨델의 작품을 소장하는 것조차 거부했는데, “나 같이 미천한 사람이 어떻게 감히 이런 위대한 작품을 소장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기 까지 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심각한 양심의 가책을 느낄수 밖에 없는데, 나는 베토벤 보다 한참 하찮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헨델 작품의 악보와 음반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거의 범죄 수준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그만 모골이 송연해 지기까지 한다.

어쨌든 평생 교회에는 거의 머리도 들이 대지 않았던, 범신론 내지는 이신론자임에 분명했을 베토벤에게 음악은 지상에서 가장 신성한 대상이었고, 그는 평생을 그 신성함을 파내기 위해 분투했던 것이다. 그런데 베토벤의 신성함은 바흐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다. 바흐에게는 오직 교회와 신만이 신성했다. 음악은 그것을 위해 봉사하는 심부름꾼의 역할만 해야 했으며, 바흐 자신도 자신을 위대한 예술가라거나 다른 사람보다 특별하다거나 하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자신은 그저 한 사람의 기술자일 뿐이며, 그 기술은 교회를 위해 쓰이는 여러 다양한 분야들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나 베토벤에게는 음악 그 자체가 목적이며, 그 자체가 신성한 것이다. 음악이 신성한 이유는 그것이 음악이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또한 자신은 훌륭한 음악가이며, 따라서 인간들 중에서 질적으로 다른 고결한 위치에 있게 되는 것이다. 그는 음악 자체만의 신성함을 최고의 경지로 올리고 싶었다. 비록 그가 자신의 최고의 경지라고 여겼던 9번 교향곡에 가서는 어쩔 수 없이 텍스트를 사용함으로써 음악 자체의 위대함이라는 목표를 이그러뜨리고 말았지만, 9번 교향곡 이후 작곡한, 그리하여 죽기 직전까지 작곡하고 있었던 현악4중주들에서는 거의 그 목표에 도달하고 있었다. 우리는 여전히 음악의 독자적인 힘만으로 신성함의 경지에 도달하고자 했던 베토벤의 노력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음을 그의 마지막 현악4중주들을 통해 눈물겹게 읽을 수 있다.

베토벤의 이러한 눈물겨운 노력과 광신도적 태도 덕분이었는지 아니면 단지 사회의 변화 발전의 덕분이었는지 딱 잘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베토벤 이후 음악의 지위가 점점 더 높은 위치로 올라가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인간을 현 존재에서 한 차원 더 높은 새로운 존재로 진화시키는 중요한 연결 고리로 까지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쇼펜하우어는 거의 가망이 없는 고통으로만 가득한 이 추악한 세계에서 비록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번민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방의 통로로서 음악을 제시하기까지 한 것이다. 실제 쇼펜하우어의 사상은 아무리 곱게 봐주려고 해도 불교사상을 그대로 도용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불교를 도용하지 않은 그 자신의 유일한 독창적 사상은 결국 음악이다. 고통의 피난처, 안식처로서의 음악이다.

그러나 쇼펜하우어의 염세적 세계관을 거의 왕자병(!)에 가까운 자기 긍정의 힘을 통해 극복하려 했던 니체에게 음악은 단지 피난처나 도피의 수단에 그치지 않았다. 니체에게 음악은 미천하고 나약한 인간이 한 차원 높은 초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관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초인이라는 초현실적인 존재를 현실화 할 수 있는 음악적 단초로 금관악기를 마구 난사하고 있는 바그너 풍의 음악에서 찾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바그너는 ‘탄호이저’나 ‘파르지파르’와 같은 크리스트교 색체가 짙은 음악을 만듦으로써 교회와 야합하고 말았다. 하필이면 성경을 읽을때는 손이 더러워질까봐 장갑을 끼고 보는 니체 앞에서 교회에 굴복한 옛 친구라니!

 

이렇게 음악의 지위는 현기증 날 정도로 상승하였다. 음악을 기껏해야 이데아에 대한 가장 저급한 형태의 그림자, 복사본의 복사본 정도로 보거나 아니면 아예 자기를 상실한 일종의 정신병으로 바라보았던 플라톤이나, 음악을 심리, 감정 현상에 대한 아주 저급한 모방으로 간주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와 비교해 보면 이건 거의 천지개벽이라고 할만 한 변화가 일어난 셈이다.

그러나 동양에서 오래 전부터 내려온 지혜로운 말에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너무도 유명한 말이다. 또 주역(周易)에서도 한 결 같이 달이 차면 기운다는 식의 경고문이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로 모습만 바꾸어서 끝없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이야기가 어디 동양만의 전유물이랴? 고대 아테네의 7현자 중 한 사람이었던 솔론도 이런 말을 했다. 그는 당시 최대의 번영을 구가하고 있던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에게 지혜로운 말씀을 남겼는데, 이 글의 주제와는 많이 벗어나지만, 매우 훌륭한 말씀이기 때문에 잠시 여기에 옮겨본다.

“왕이시여! 저는 신이 인간의 번영을 질투하고 인간을 괴롭히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인간의 일생을 70년이라 하면 2만 6250일이 되는데 그 가운데 하루라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는 일이 없으니 왕이시여, 인간의 생애는 이토록 우연한 것입니다. 그러니 왕이시여! 왕께서 훌륭한 생애를 마치고 돌아가신 것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지금 아무리 왕께서 부유하고 나라가 강하다고 하더라도 절대 왕을 행복하다고 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는 이 말을 볼 때마다 경탄을 금치 못한다. 어렵고 추상적인 용어 대신 2만 6250일이라는 숫자를 도입하여 1/26250이라는 극히 미세한 확률을 제시함으로써 인생의 무상(無常)을 일깨운 이 재치에 무릎을 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1/수십억 겁 이라는 엄청난 숫자를 쓰지 않아도 1/26250이면 충분히 무상함을 느낄 만큼의 미세한 확률이며 또한 이 숫자는 실제 인간의 인생을 있는 그대로 사용한 숫자이기 때문에 더욱 설득력이 있다.

그러니 무상이니 어쩌니 하는 말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서양인들의 지적인 유산을 평가절하 하는 우매함은 범하지 않는 것이 좋다. 공자니 맹자니 묵자니 노자니 장자니 석가모니니 예수니 할 것 없이 동양에서 탄생한 사상들은, 그래서 많은 동양 국수주의자들을 흥분시키는 그런 고대 사상들은 사실 동양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서도 이미 다 알고 있는 것들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동양인들은 그것을 추상적으로, 그리고 통일되지 않은 개념을 사용해서 기술했고, 서양인들은 그것을 아주 간략하고 설득력 있게 표현했을 따름이다. 그래서 같은 이야기를 해도 동양의 고전이 훨씬 더 깊이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내게는 그 깊이라는 것이 개념화 부족의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그래서 동양의 최고 철학책은 역시 대화체로 구성되어 그래도 이해하기가 편한 논어(論語)일 수밖에 없는 것인데, 다만 이 대화들이 계통 없이 마구 뒤섞여 있는 바람에 플라톤의 ‘국가’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에티카’ 등에 비교한다면 그 격이 형편없이 떨어진다. 도대체 모호함을 아무리 깊이로 위장한다 한들 그것은 철학자의 올바른 자세는 아닌 것이다. 그러니 난데 없이 머리와 복장은 불교풍으로 꾸미고서 ‘21세와 노자’ 어쩌고 하면서 무덤 속에 있던 동양의 고대 사상가들을 벌떡 일으켜서 마구 침소봉대하며 마치 2000년 전의 사상이 오늘날을 예언해서 맞아 떨어졌다는 듯이 사기치는 일은 더더욱 그릇된 자세일 것이다. 아니 그것은 거의 범죄에 가깝다. 대부분 동양의 고전들은 체계의 부족으로 인하여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으로부터 부자유스러운 존재론적인 멍에를 가지고 있으니, 이는 노자의 이름을 빌려서 자신의 설익은 사상을 비판으로부터 막아 보자는 얄팍한 술수에 다름이 아니다.

아직 할 말은 산더미 같이 남았지만 동서양의 비교는 더 이상 하지 말도록 하자. 그것은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니까. 다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음악에 대한 홀대는 물론 부당한 것이지만 음악을 지나치게 신성화 하는 것 역시 위험한 발상이라는 점이다.

물론 내 개인적인 견해이이기는 하지만 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마’, 바그너의 ‘파르지팔’ 처럼 의도적으로 신성함을 목표로 해서 듣는 자들로 하여금 신성하게 여기라고 강요하는 그런 신성 과잉의 음악은 때로는 오히려 내게 역겹게 느껴지기까지 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헨델의 오라토리오 중에서도 신성과잉의 징조가 보이는 ‘메시아’ 보다는 인간의 모습(특히 작곡가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는 ‘젭타’ 나 ‘마카베우스의 유다’를 더 선호한다. 그 중 ‘젭타’는 정말 위대한 작품이다.

그러나 신성 과잉이 되었건 말았건 간에 사람이 음악을 들으며 어떤 신성함 혹은 신성함과 비슷한 일종의 탈 현세적인 감정을 느낀다는 것만은 부동의 사실인 것 같다. 그래서 눈을 지그시 감고 마치 참선이나 수도하는 듯한 자세로 음악을 듣거나 연주하는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은 것이며, 이른바 대가의 반열에 오른 음악가에게 구도자라는 칭호를 왕왕 붙이는 것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다른 어떤 일 보다도 특히 음악을 들으며 넋 나가는 모습을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것이며, 사회학적 조사가 뒷받침이 되어야 하겠지만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쉽게 매니아층이 형성되는 분야가 음악이라는 것도 확실할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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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세이 -테초에 소리가 있었다(3)
클래식 이야기 | 2008년 10월 29일 19시 29분


 어찌어찌 하다보니 쉽게 쓰겠다던 처음의 약속과는 달리 훨씬 잘난척한 꼴이 되고 말았는데, 결국 말 하고자 하는 요지는 음악의 역사는 날이 갈수록 폴라톤적인 요소와 피타고라스적인 요소가 화학적으로 분해되는 과정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감상자는 플라톤이되고, 제작자는 피타고라스가 되고 만 것이다. 즉 음악듣기를 좋아하는 것과 음악 만들기는 별로 상관이 없는 심지어는 적대적인 관계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것을 나는 음악의 존재론적인 모순이라고 부른다. 플라톤적인 코레이아, 이른바 넋 나간 열광이 없었더라면 애초에 인간은 음악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이 완전한 이성적 존재였다면 유희라는 것이 필요 없었을 테니. 그러나, 음악이 디지털화(수학화)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오늘날 음악작품이라고 부르는 것을 아무 것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음악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마침 주변에 즐거운 소리 잘 내는 친구가 있으면 다행이고, 없다면 하는 수 없이 스스로 나무막대기를 두드리던, 활줄을 튕기든 하면서 스스로 소리를 만들어야 했을 테니까. 마치 우리나라의 다듬이돌 합주처럼.

이 얼마나 기가 막힌 모순인가? 우리가 음악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모두가 이 모순 속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인 사람들이다. (베토벤의 고뇌는 무엇을 말하는가? 열광을 따르자니 수학이 울고 수학을 따르자니 열광이 우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뒤에 “베토벤의 슬픔”이라는 장에서 다시 다룰 것이다.)

물론 오늘날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애초에 음악적 열광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단지 뛰어난 수학자적 재능을 가진 사람이 과학적으로 곡을 만드는 법을 착실히 익혀서 그 뛰어난 기술로 곡을 만든다. 그런 사람에게 있어서 음악은 마치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같은 것이다. 실제로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만 키보드로 요란하게 두드린 다음 주문한 사람에게 이메일로 전송하는 음악가도 있다. 이미 음악도 하나의 사업인 것이다. 흔히 팝음악이나 영화음악을 상상하겠지만, 실제로 이른바 클래식 음악계라는 곳에서도 이런 현상은 심각하다. 작곡과에서는 음악을 만듦에 있어 필요한 감각과 정서를 키우지 않고, 그런 훈련도 하지 않는다. 그저 디지털화된 악보의 수학적 분석만이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예술가가 아니라 작곡 엔지니어의 양성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음대 작곡과 졸업생들은 자신의 작품을 만드는 일 보다 남의 악보에 분석식 써 놓는 일을 더 좋아한다.

또한 그 분석식을 적음에 있어서도 대체로 대학 작곡과 출신들을 보면 19세기 이전의 작곡가로는 바하만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고, 그 이후의 작곡가로는 라벨이나 스트라빈스키, 혹은 안톤 베베른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수학적이니까. 일반인이 들을 때는 따분하거나, 혹은 듣기 거북한 소리이지만 자신들이 바라보는 악보에서는 피타고라스가 우주의 심포니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그런 조화로운 세계가 펼쳐지니까. 소리로는? 그것은 알 바 없다. 피타고라스의 법칙이나, 유클리드 기하학을 한창 공부하고 있는 수학도가 직각삼각형 그림을 보면 단지 썰렁한 도형으로만 보이는가? 마찬가지로 온갖 음악의 수학으로 머리를 무장했는데, 아무리 따분하고 전혀 아름답지 않은 소리라 한들 그렇게 들리겠는가?

그런데, 대중들은 전문가를 동경한다. 음악을 감상하는 자들이 음악을 만드는 자들에게 오염되기 시작한다. 이제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당연히 엄청난 공부를 해야 하고 그런 다음에야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음악의 원초적 열광은 어디로 갔는가? 클래식 뿐 아니라 록 음악까지 그렇게 들으려고 한다. 영국의 댄스음악인 테크노를 심각한 표정으로 깊이 감상하는 한국대학생은 흔한 풍경이다.

당연히 내겐 이런 현상이 반갑지 않다. 음악이 소리를 주물럭거려서 만든 공산품이 아니라면, 분명히 그 주가 되는 것은 플라톤적인 열광(코레이아)이며, 피타고라스적인 요소는 단지 그것을 용이하게 하고 잘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음악계는 주객이 전도되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산업혁명과 더불어 갑작스럽게 일기 시작한 바하에 대한 외경의 움직임, 그리고, 그 거룩한 아름다움의 표상이었던 모차르트가 1990년대 이른바 모차르트 재조명 작업(그의 서거 200주년을 맞아 이루어진 집중적인 연구)을 통하여 신산(神算)이라 불릴만한 계산의 대가로 그 이미지가 엄청나게 변모되어 가는 과정 등이.

불과 10년 전만 해도 모차르트의 41번 교향곡을 말할 때 “태양과 같은 광채에 휩싸여 있고, 범접하기 힘든 장엄한 위엄에 가득 찬 제왕과 같은 기품....”운운 하는 것이 주조를 이루었었는데, 최근 5년 전 부터는 “모차르트가 아니고서는 누가 감히 무려 6개나되는 모티브를 푸가로 엮을 시도를 하였겠는가? 기껏 1주제, 2주제에 발전부 주제까지 쳐서 2-3개의 주제만을 사용하고도 쓰기 어려운 소나타 형식을 무려 5개나되는 주제를 가지고 엮어내는 절묘한 테크닉...”운운하는 식으로 바뀐 것이다. 물론 그것도 음악을 바라보는 중요한 관점이긴 하지만, 모차르트의 41번 교향곡을 주제가 5개라서 즐겨듣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 곡을 즐겨 듣던 사람들 중에 모티브를 일일이 따져가며 그 수를 세어가며 왼쪽 뇌를 맹렬히 혹사시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딴 얘기는 악보 상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른바 5개나 되는 주제를 사용해서 엮어낸 소리, 그 소리 자체인 것이지, 주제의 개수와 그것을 엮는 테크닉이 아닌 것이다.

베토벤의 경우도 마찬가지의 현상이 나타난다. 베토벤 탄생 200주년을 계기로 활발히 이루어진 연구의 결과 “열정의 작곡가”는 “오묘한 기법과 지극히 까다로운 기법의 작곡가”로 변신되었다. 최근 나타나는 베토벤과 관계되는 글은 거의 대부분 아주 단순한 동기를 끊임없이 발전시켜나가는 이른바 “아주 평범한 벽돌들을 쌓아서 굉장한 건축물로 만드는” 그의 수학적 능력에 집중되어있다.

아! 이제 음악은 종말을 향하여 치닫고 있다. 그 존재론적인 모순으로 인하여 기껏해야 공장에서 찍어내는 상품 아니면, 소수의 지배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암호체계로 변해가고 있다. 음악을 듣는 자는 아직도 플라톤적인 열광을 잊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음악을 만드는 자는 더 이상 열광에 의지하지 않는다. 음악은 수학이 되어간다. 그리고 그 수학 같은 음악에서 열광을 느낄 수 없다고 불평하는 청중들에게 그것은 너희들의 무식 탓이라고 우긴다. 이제 청중들도 수학을 공부한다. 그럼 작곡가는 더 어려운 수학을 만든다. 그리고 또 청중들을 꾸짖는다. 때로는 청중들이 반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예를 들면 펑크록 같은. 그러나, 그 반란은 이내 진압된다. 펑크는 쉬운, 그러나 열광적인 음악의 길을 열어준 것이 아니라, U2를 통하여 록음악을 더 어렵게 만드는데 일조하고 말았다. 계속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결국 무엇이 남을까? 전문가는 곡을 만들겠지만, 듣는 자는 다른 곳에서 열광을 구한다. 음악이 아닌 스타의 표상에서, 아니면 과거의 음악에서. 그렇게 음악은 사라져 간다.

실제로, 오늘날 음악의 영향력은 형편없이 약해져 가고 있다. 클래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진영은 거의 고사상태이다. 오늘날 더 이상 모차르트 같은 인기 클래식 작곡가는 없다. 죽은지 200년이 지난 사람의 음악이 아직도 가장 많은 발매 부수를 자랑한다는, 그래서 오늘날 살아있다면 저작권으로 엄청난 돈을 벌었을 것이라는 그 위대한 생명력을 찬양하기 보다, 그럼 도대체 오늘날 작곡가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200년 전의 음악보다도 관심을 끌지 못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클래식 뿐만이 아니다. 소위 대중음악의 분야에서도 그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오늘날 왕년의 비틀즈나 롤링스톤즈 같은, 아니 하다못해 레드제플린이나 딥퍼플 정도의 영향력을 지닌 소위 대중 음악가는 이제 보이지 않는다. 이른바 대중음악에서도 진지한(!)음악을 한다는 사람들과 풀빵 음악이 분화 되어버렸기 때문이고, 그 진지한(!)그룹은 악기만 전기기타 등등일 뿐이지 알아먹기 힘든 어려운 음악으로 대중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기는 오늘날 클래식 음악가들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평론가가 생기고, 그 평론을 또다시 논쟁거리로 만드는 학자가 생기면서, 이젠 더 이상 록도 왕년에 보여주었던 플라톤적인 열광의 힘을 잃어버렸다. 그렇다고 풀빵 음악이 뭐 대단한 힘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이른바 스타 시스템의 현대판 집단매춘(결국 모든 스타 시스템은 성 상품화다)이나, 영화 사운드트랙의 형태로 기생할 뿐이다. (벌거벗은 모습에 기생하던 머라이어 캐리의 노래는 이제, 그녀의 나이가 들고 성상품화가 힘들어지자 영화에 기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미국에서나,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이른바 영계에 대한 남자들의 성욕을 노골적으로 상품화하는 풀빵 음악이 만들어진다. 한국의 S.E.S 나 미국의 Jewl이나 마찬가지다. 99년 트렌드의 특징. 미소녀 밴드. 본인은 극구 부인하겠지만 결과적으로 그 선구자가 된 앨라니스 모리셋. 그녀의 성공이 풀빵 장수들에게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주었으니까.)

이건 음악에만 있는 독특한 현상이다.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걸작이지만, 피카소의 게르니카 보다 대중적으로 더 유명하다고는 단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렘브란트는 몰라도 피카소는 웬만한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포르노그라피나 만화를 보지만, 그래도 이른바 순수미술의 영향력은 아직은 상당하다. 예술 중 가장 빨리 죽어 가는 음악. 이제 나는 여기에 음악을 위한 묘비명을 새기려고 한다. 내가 사랑했던 음악들에 대한 비망록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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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세이 -태초에 소리가 있었다(2)
클래식 이야기 | 2008년 10월 23일 23시 38분

소리의 조작을 통한 감정의 조작, 이것이 음악의 기원이다. 이는 수십만년에 걸쳐 아주 서서히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전쟁용이건 유희용이건 종교용이건 간에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애초에 인간의 감정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근대사회에서는 이른바 문화영역의 자율적 합리화 경향으로 인해 최근까지 무시되어 왔다. 그리하여 음악이라는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 분야 안에서의 일련의 합리적 법칙만 추구하는 영혼 없는 전문가가 되었지, 이 분야가 사회에서 인간의 삶속에서 차지하는 위치나 역할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이러한 사실을 갑작스레 되살린 사람들은 이른바 음악치료요법이란 것을 들고 나온 일단의 유사과학자(자신들은 뉴에이지 과학이라고 하지만) 들이다.

어쨌든 여기에 관한 한 근대 이전의 인류들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고대 고전문화가 발흥하고 과학이 발달하면서 어떤 특정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소리에 나름대로의 법칙이 있지 않을까 하는, 그래서 그 법칙을 알아내면 보다 편하게 감정을 조작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동·서양에서 공히 일어났다. 특히 동양에서는 음악의 감정 조작적 속성을 수천 년 전 부터 주목했다. 주목만 했던 것이 아니라 소리들을 체계적으로 유형화 하였고, 이렇게 유형화된 소리를 다시 체계적으로 유형화된 감정들과 조합시켰다. 이리하여 관혼상제를 비롯한 각종 애경사에 사용할 소리들의 체계가 일목요연하게 기록되기 시작했다. 체계적인 음악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아마 다음과 같은 경로를 취했을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권세가 당당한 집안에서 초상을 당하면 그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 슬픈 소리 잘 내는 사람 -곡소리 잘 내는-을 고용했다고 하는 기록이 나온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그리 자주 있는 것은 아니고, 또 그 사람이 초상 때를 맞추어 마침 집 근처에 있으리란 보장도 없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런데 만약 사람을 슬프게 하는 소리의 법칙을 알아낸다면 어떨까? 아주 경제적이지 않을까? 굳이 수 천리 밖의 곡 잘하는 사람을 찾으러 수소문할 필요 없이, 그 소리 내는 방법을 상징체계를 이용해서 기록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며 필요할 때마다 그 기록을 보고 거기에 기록된 대로 따라서 재생하면 되는 것이다. 유가족이 음치만 아니라면 적힌 대로 재생만 하면 그 뿐이다.

눈치 빠른 사람은 알아채었겠지만 이것이 바로 악보이며, 체계적인 악곡이다. 그런데 이 악보라고 하는 것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 소리의 표준화가 필요하다. 그래야 동일한 악보를 가지고 동일한 소리를 낼 수가 있다. 따라서 악보의 기록과 표준화된 악기의 탄생은 서로가 서로를 전제로 하는 관계에 있다. 이런 표준화된 악기는 재료가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라야 하고, 표준화된 소리를 만들기 쉽도록 쉽게 조율할 수 있어야 한다.

똑 같은 소재로 같은 규격대로 만들기만 하면 동일한 소리를 보장하는 악기, 바로 현악기는 여기에 가장 적합한 악기다. 이 현악기의 탄생이야말로 음악을 수 십 단계 워프 하게 만든 대 발견이다. 동양권이나 서양권이나 가릴 것 없이 음정과 가락이 있는 음악이라면 무엇이든 현악기가 사용되고 있다는 점은 아주 의미하는 바가 크다. 오늘날 평균율 악기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는 피아노도 따지고 보면 현악기다. 이러한 현악기의 탄생은 음을 디지털 부호로 바꿀 수 있게 만들었다. 만약 현악기가 없엇다면 피타고라스가 무슨 재주로 음악을 대상으로 수학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현악기가 있었기에 간단히 각 음정간의 관계를 으뜸음을 기준으로 한 일정한 정수비로 표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음악의 디지털화 과정을 예화로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예컨대 과거에 어떤 사람이 마음을 즐겁게 만드는 가락을 잘 불렀다고 하자. 그리고 다른 어떤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고 하자. 그럼 방법은 무엇일까? 당연히 그 사람을 불러서 직접 듣고, 수백 번 들어서 그것을 머리 속에 완전히 기억하는 것은 물론 그 소리를 내는 도구들도 일일이 그대로 기억하는 것이다. 그러나, 표준화가 된 악기(꼭 현악기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현악기가 가장 표준화하기가 쉽다. 1차원적인 길이만으로 가능하니까. 3차원적인 체적까지 소리의 변수가 되는 관악기는 우리 조상들의 기술로는 다루기 힘들었다. 실제로 관악기는 상당한 기간 동안 단지 진군나팔과 같은 효과음으로만 사용되었다. 오케스트라에서도 상당한 기간 동안 단지 장식음의 역할만을 했다. 관악기가 오케스트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은 만하임 악파가 처음이며, 모차르트, 하이든에 이르러서야 제 자리를 찾게 되었다)가 있다면, 기억해야 할 사실이 훨씬 줄어든다. 왼쪽에서 몇 번째 현을 심장 두 번 뛰는 길이만큼 튕긴 뒤 오른쪽으로 세 번째, 네 번째 현을 연달아 튀기되, 그 길이는 같고, 그 길이의 합이 첫 번째 소리의 길이와 같게 하고 하는 등등, 소리가 아니라 일상적인 문자로 기록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때부터 사람이 만드는 우연적인 소리들은 동질적인, 그러나 단지 양적으로만 다른 소리들로 구성된 체계를 이루게 되고, 이 체계에 포괄되는 모든 소리는 음악이라고 불리게 된다. 이제 음악은 제멋대로의 소리가 아니라 같은 종류의 악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같은 소리를 재생할 수 있는 그런 보편적인 체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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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 들장미, 그리고 슈베르트와 브람스
클래식 이야기 | 2008년 10월 08일 08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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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절세의 명시 들장미. 독일어의 압운을 지키면서 읽어보면 더더욱 이 시가 왜 명시인지 알수 있지만, 그 시의 의미에 대해서는 엉뚱한 가십수준의 내용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가십이 어느 목사의 딸을 사랑했다가 결혼하지 못해서 그 죄책감에 "남자들이여 처녀를 함부러 건드리지 마라"라는 뜻에서 이 시를 썼다는 것이리라. 물론 그 죄책감이 하나의 계기가 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저런 청교도적인 시를 썼다고 주장하는 것은, 괴테의 유물론적 경향과 범신론적(같은 뜻인가?) 성향을 완전히 망각한 유치함의 극치다.

괴테의 예리한 풍향계는 남자와 처녀의 관계에서 바로 근대성의 특성을 읽었고, 그것은 바로 의식철학, 즉 주체-객체 철학이 가져오는 인간과 자연의 분리, 자연의 대상화, 그리고 그 결과로서 나타나는 근대 자본주의 문명의 핵심인 소외였다. 물론 그는 이를 명료한 이론적 진술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을 이론적 진술로 드러낸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의식철학이니....게오르크 짐멜이 예리하게 지적했듯이 괴테는 자연과의 일체속에 있기 때문에 주관적인 감상과 객관적인 자연이 구별되지 않는다. 즉, 한 소녀를 아프게 한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는 것과 자연을 객체화 함으로써 느끼는 분리감과 소외가 구별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보편적인 아픔은 개인적인 감상으로써만 표현될수 있다.

이제 이 시를 다시 읽을수 있다. 소년은 아름다움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는 아름다움을 향유하지 못하고 그것을 소유하려 한다. 왜 그럴까? 그는 자신과 들장미를 포함한 자연이 이미 하나의 전체임을 알지 못한다. 따라서 그는 자신과 들장미를 주체-객체의 관계로 파악한다. 따라서 그가 오래오래 들장미의 아름다움을 향유하기 위해 그는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들장미를 꺾는다. 즉 파괴한다. 이로써 그는 그 아름다움을 향유할 기회를 스스로 저버리게 된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자신과 들장미가 이미 하나임을 알지 못하기에 또 다른 들장미를 파괴하러 갈 것이다.

이와 같은 주제는 향후 괴테의 거의 모든 작품에 일관되게 흐르는 주제가 된다. 젊은 베르테르가 사랑과 소유를 구별할 수 있었다면 과연 자살했을까?  파우스트가 지식을 소유하려는 망상에서 벗어났다면 그 방황이 필요했을까?

이 한 편의 시에 간명하게 표현된 내용을 헤겔은 그의 정신현상학에서 얼마나 장황하고 복잡하게 기술해 놓았던가? 그 유명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말이다. 

이제, 들장미의 이런 내용을 음미하며 이를 노래로 들어보자. 앞의 것은 슈베르트가 곡을 붙인 것이고, 뒤의 것은 브람스가 곡을 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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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드 음반의 복제, 그리고 구제 미학
클래식 이야기 | 2008년 10월 07일 18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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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만 쓰면, 웬지 근사해 보인다고 생각하고, 자기 본령인 영화에 대해서는 별 깊이도 없는 어느 얼치기 평론가가 마구 외국 이론가 이름을 들이대다가 저지른 코메디가 "그러니까, 월터 벤자민에 따르자면...", 물론 그의 영어 코메디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마이클 푸콜트, 개스턴 배이츨러 에서 압권을 이루었다. 아, 여기서 하려는 주제는 이게 아니고, 문득 그 웃기는 평론가의 기억이 되살려 놓은 발터 벤야민의 사유다.

최근에 최성민씨의 열정적인 노력으로 벤야민의 사방으로 반짝이는 사유의 편린들이 연거푸 번역이 되고 있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 역사철학 테제, 폭력에 대하여 등은 물론 저 엄청난 페이지의 "아케이드 (파사쥬)프로젝트"까지 완역 된 마당에 이제 벤야민의 중요한 글은 다 옮겨졌다고 볼수 있다.

아래 포스팅에서 글렌 굴드의 바흐 연주를 컴퓨터로 재현한 음반에 대한 각종 논란을 보다가 문득 떠오른 이름이기도 하다. 클래식 연주자는 20세기 이후 예술가들 중 거의 마지막 신화적 존재였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바그너에서 이미 조짐이 보엿지만, 20세기 들어 작곡이라는 과업은 이미 고도의 전문적인 영역으로, 나름의 학적 체계와 기술, 그리고 정교한 계산의 영역이 되어버렸지만, 그리하여 작곡가의 작품은 단지 오선지의 부호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저 천재적인 연주자들의 휘황찬란한 영감에 가득찬 연주의 순간이야 말로 진정 신화가 되었던 것이다.

20세기 들어 천재의 칭송을 받는 존재가 작곡가에게서 연주자로 넘어간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웬지 체계적 훈련과 거리가 멀고 오직 신적 영감의 내림굿이라도 받은듯한 지휘자에게로 넘어간 것도 벤야민의 용어를 빌리자면 작곡가의 아우라가 소멸되었기 때문이리라. 체계적인 화성학과 대위법은 작곡을 기술의 영역으로 밀어넣어, 아우라를 제거하고 합리화(!)했다.

그런데 웬걸? 레코드가 등장했다. 대량복제의 시대가 된 것이다. 콘서트 홀이라는 신전에서 경건하게 영접했던 저 피아노의 신, 바이올린의 신이 내집 안방, 거실, 심지어 워크맨의 탄생 이후 어디에서나 만날수 있게 되었다. 그러더니 급기야는 콘서트 홀에서조차 수십년 전에 죽은 연주자의 연주를 그대로 재현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연주자의 아우라도 사라져가고 있다. 아니, 이미 사라졌는지도 모른다. 아우라는 어디까지나 접근 불가능성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블로그의 주인장인 디누 리파티 역시 열악한 음질의 음반 몇장만 남겨놓았기에 아우라가 형성된 것이다. 만약 그의 연주스타일을 그대로 복제해서 피아노에 입력해서 재생시킨다면 그 아우라도 사라질 것이다.

아도르노는 이런 탈신화의 현상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벤야민은 또 다른 측면에서 희망을 찾으려고 했다. 탈신화화된 대상은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이 현재의 실천과 연관되면서 재구성되고 재의미화된다. 파괴된 신화는 새로운 의미의 구성이다. 신화는 파괴되지만 동시에 지배계급의 특권 운운하는 또 다른 낙인도 함께 파괴된다. 그런 의미에서 벤야민은 악마성이라는 모호한 신화로 포장된 보들레르를 파괴하고, 그와 동시에 부르주아적 퇴폐라는 다른 낙인도 그에게서 제거할수 있게 되엇다. 이로써 보들레르는 현재의 시간속에 재구성된다. 이를 파괴와 구제로서의 비평이라고 불렀다.

어쩌면 컴퓨터로 굴드를 복제하려는 시도 역시 또 다른 측면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소니는 굴드를 복제함으로써 돈을 벌려 하겟지만, 복제가 성공할수록 굴드의 신화는 무너지며, 소니는 자신의 상업적 동기를 달성하지 못하게 된다. 대신 우리는 굴드의 신화가 아니라 굴드의 실체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며, 어떤 아우라 없이 굴드의 연주 그 자체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파괴는 곧 구제인 것이다.

역설적인 것은, 글렌 굴드 자신이 콘서트 홀의 카리스마 운운하며 피아니스트가 신화화 되는 것에 적극적으로 저항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굴드는 죽은 뒤 자신이 신화화 된 것을 슬퍼했을 것이며, 자신의 신화를 이용하여 장사하려는 소니에게 분노했을 것이지만, 그 결과 자신의 신화가 깨어지는 것을 반길지도 모른다. 굴드의 평소 소신대로라면 "당신의 연주의 신비의 근원은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에 "단지 피아노를 치는 것 뿐입니다."라고 대답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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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발생학 -태초에 소리가 있었다(2)
클래식 이야기 | 2008년 10월 05일 21시 56분

아래 포스팅에서 음악의 시작은 원시시대 우리 조상들이 터득한 소리의 조작을 통한 감정의 조작에서 시작되었음을 살펴보았다.그것이 전쟁용이건 유희용이건 종교용이건 간에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애초에 인간의 감정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근대사회에서는 이른바 문화영역의 자율적 합리화 경향으로 인해 최근까지 무시되어 왔다. 그리하여 음악이라는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 분야 안에서의 일련의 합리적 법칙만 추구하는 영혼 없는 전문가가 되었지, 이 분야가 사회에서 인간의 삶속에서 차지하는 위치나 역할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이러한 사실을 갑작스레 되살린 사람들은 이른바 음악치료요법이란 것을 들고 나온 일단의 유사과학자(자신들은 뉴에이지 과학이라고 하지만) 들이다.

어쨌든 여기에 관한 한 근대 이전의 인류들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고대 고전문화가 발흥하고 과학이 발달하면서 어떤 특정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소리에 나름대로의 법칙이 있지 않을까 하는, 그래서 그 법칙을 알아내면 보다 편하게 감정을 조작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동·서양에서 공히 일어났다. 특히 동양에서는 음악의 감정 조작적 속성을 수천 년 전 부터 주목했다. 주목만 했던 것이 아니라 소리들을 체계적으로 유형화 하였고, 이렇게 유형화된 소리를 다시 체계적으로 유형화된 감정들과 조합시켰다. 이리하여 관혼상제를 비롯한 각종 애경사에 사용할 소리들의 체계가 일목요연하게 기록되기 시작했다. 체계적인 음악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아마 다음과 같은 경로를 취했을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권세가 당당한 집안에서 초상을 당하면 그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 슬픈 소리 잘 내는 사람 -곡소리 잘 내는-을 고용했다고 하는 기록이 나온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그리 자주 있는 것은 아니고, 또 그 사람이 초상 때를 맞추어 마침 집 근처에 있으리란 보장도 없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런데 만약 사람을 슬프게 하는 소리의 법칙을 알아낸다면 어떨까? 아주 경제적이지 않을까? 굳이 수 천리 밖의 곡 잘하는 사람을 찾으러 수소문할 필요 없이, 그 소리 내는 방법을 상징체계를 이용해서 기록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며 필요할 때마다 그 기록을 보고 거기에 기록된 대로 따라서 재생하면 되는 것이다. 유가족이 음치만 아니라면 적힌 대로 재생만 하면 그 뿐이다.

눈치 빠른 사람은 알아채었겠지만 이것이 바로 악보이며, 체계적인 악곡이다. 그런데 이 악보라고 하는 것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 소리의 표준화가 필요하다. 그래야 동일한 악보를 가지고 동일한 소리를 낼 수가 있다. 따라서 악보의 기록과 표준화된 악기의 탄생은 서로가 서로를 전제로 하는 관계에 있다. 이런 표준화된 악기는 재료가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라야 하고, 표준화된 소리를 만들기 쉽도록 쉽게 조율할 수 있어야 한다.

똑 같은 소재로 같은 규격대로 만들기만 하면 동일한 소리를 보장하는 악기, 바로 현악기는 여기에 가장 적합한 악기다. 이 현악기의 탄생이야말로 음악을 수 십 단계 워프 하게 만든 대 발견이다. 동양권이나 서양권이나 가릴 것 없이 음정과 가락이 있는 음악이라면 무엇이든 현악기가 사용되고 있다는 점은 아주 의미하는 바가 크다. 오늘날 평균율 악기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는 피아노도 따지고 보면 현악기다. 이러한 현악기의 탄생은 음을 디지털 부호로 바꿀 수 있게 만들었다. 만약 현악기가 없었다면 피타고라스가 무슨 재주로 음악을 대상으로 수학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현악기가 있었기에 간단히 각 음정간의 관계를 으뜸음을 기준으로 한 일정한 비율로 표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음악의 디지털화 과정을 예화로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예컨대 과거에 어떤 사람이 마음을 즐겁게 만드는 가락을 잘 불렀다고 하자. 그리고 다른 어떤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고 하자. 그럼 방법은 무엇일까? 당연히 그 사람을 불러서 직접 듣고, 수백 번 들어서 그것을 머리 속에 완전히 기억하는 것은 물론 그 소리를 내는 도구들도 일일이 그대로 기억하는 것이다. 그러나, 표준화가 된 악기(꼭 현악기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현악기가 가장 표준화하기가 쉽다. 1차원적인 길이만으로 가능하니까. 3차원적인 체적까지 소리의 변수가 되는 관악기는 우리 조상들의 기술로는 다루기 힘들었다. 실제로 관악기는 상당한 기간 동안 단지 진군나팔과 같은 효과음으로만 사용되었다. 오케스트라에서도 상당한 기간 동안 단지 장식음의 역할만을 했다. 관악기가 오케스트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은 만하임 악파가 처음이며, 모차르트, 하이든에 이르러서야 제 자리를 찾게 되었다)가 있다면, 기억해야 할 사실이 훨씬 줄어든다. 왼쪽에서 몇 번째 현을 심장 두 번 뛰는 길이만큼 튕긴 뒤 오른쪽으로 세 번째, 네 번째 현을 연달아 튀기되, 그 길이는 같고, 그 길이의 합이 첫 번째 소리의 길이와 같게 하고 하는 등등, 소리가 아니라 일상적인 문자로 기록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때부터 사람이 만드는 우연적인 소리들은 동질적인, 그러나 단지 양적으로만 다른 소리들로 구성된 체계를 이루게 되고, 이 체계에 포괄되는 모든 소리는 음악이라고 불리게 된다. 이제 음악은 제멋대로의 소리가 아니라 같은 종류의 악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같은 소리를 재생할 수 있는 그런 보편적인 체계가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말로 표현하는 것 마저 귀찮고 번거로워지면서 서양에서는 그것만을 위한 독특한 상징체계를 새로이 만들었고, 중국이나 한국 쪽에서는 특정한 문자를 이용하여 소리만의 상징체계로 사용하게 되었다. 즉, 소리를 디지털 부호화 하였다. 소리에 이어서 소리를 내는 도구들도 디지털화 되었다. 최초의 음율 악기를 기준으로 존재하는 모든 악기들이 같은 비율로 조정되었다. 예컨대 어떤 피리의 세 번째 구멍을 막고 내는 소리와 이 현악기의 왼쪽에서 다섯 번째 현을 튀기는 소리와, 지름이 22센티 두께가 1밀리인 청동소재의 종의 소리는 같다 등등의 식으로. 마치 화폐라고 하는 표준을 중심으로 모든 상품의 가치가 매겨지는 것과 같다.

이렇게 소리를 디지털화 할 수 있게 되었으면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은? 당연히 존재하는 모든 음악을 모아서 그것을 디지털 부호로 변환시키는 과정, 즉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일이다. 서양에서는 크리스트교에 사용되던 소리들부터 데이터베이스화 되었다. 이른바 그레고리안 찬트라고 불리는 방대한 소리들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던 이 소리들이 네우마 악보라고 불리우던 네 줄 짜리 악보로 기록되었다. 동양에서는 공자와 그의 학파가 제사를 지낼 때 사용되던 소리들을 문자를 이용하여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후세에 “詩經”과 “樂記”로 불리워졌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악기는 오늘날 전해지지 않고, 단지 그런 것을 만들었다는 기록만이 전해진다. 여기에서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은 악보의 탄생이 음악의 탄생이 아니라는 것이다. 악보라는 체계가 있기 전에 이미 표준적인 음율로 조율될 수 있는 악기가 그 상징체계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리고 피타고라스의 정수비를 고집하지 않고 평균율으 ㄹ채택함으로써, 소리는 가장 낮은 소리에서부터 가장 높은 소리까지 똑 같은 옥타브의 무한 반복으로 표현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음악이라는 상징체계가 완성되었다. 즉 소리를 완전히 대상화하여 인간의 도구적 이성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부터 소리를 이렇게 표준화된 체계로 포섭하여 조작가능하게 바꾸는 것을 “음악화”라고 부르기로 하자.

그런데 우연의 일치인지 동양이나 서양이나 모두 종교와 관계된 소리들이 제일 먼저 수집되어 음악화 되었다. 종교적인 지배자들이 왜 음악에 집착했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한 견해는 종교의 거룩하고 숭고한 내용 -사실은 피지배자들을 마취시키는-을, 문맹자들이 대부분인 피지배계급에게 전달하려면 소리라는 매체를 통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음악에 집착했다는 것이다. 즉, 음악은 효과적인 메세지 전달 매체다. 다른 하나는 음악 자체가 가지고 있는 어떤 마취적이고, 감정조작적인 특성 때문이라는 견해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음악운동가들이 메시지 중심의 운동가요인가, 음악중심의 운동가요인가를 놓고 신창남씨(이 사람 요새 무슨일 하는지 몰라. 문화평론가란게 일종의 유행이 되었는데, 정작 그 선구자는 보이지 않으니)와 이강숙(예술의 전당에서 엄청 높은 감투를 쓰고 있다지?)씨가 격론을 벌인 적이 있었는데, 이 두사람의 견해도 결국 위의 두 이견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인다. 이 두 견해의 대립은 음악적 세계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문제인데, 이는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헤묵은 논쟁거리가 되고있다.

그런데, 그런 것 말고 또 다른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애초에 이렇게 소리의 음악화, 음악의 디지털화를 꾀한 사람들의 최종적인 목표는 단 하나의 음악, 플라톤의 표현을 빌면 음악의 이데아를 만드는 것에 있었다. 예컨대 그들은 인간을 기쁘게 만드는 음악이라면, 그 법칙을 이미 수학화된 음악을 통해 금방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더 이상 기쁜 음악을 새로이 만들어 내려고 애쓸 필요 없이, 마침내 만들어진 완전 100%표준 기쁜 음악 하나만 있으면 충분할 것이다. 슬픈 음악도, 숭고한 음악도 모두 마찬가지이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이런 모든 종류를 통괄하는 그야말로 음악의 음악, 즉 메타-음악(아, 이 메타에의 지향은 상징체계가 만들어지는 순간 저주와 같이 달라붙는다. 모든 상징체계의 저주받은 운명, 이데아를 향한 행진)도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제 어떤 새로운 음악도 필요 없게 된다. 그리하여 끝내는 음악의 이데아 하나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작곡이 이루어지고, 계속해서 작곡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은 아직 아무도 그 이데아의 경지에까지 아무도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게 가능하다면야 플라톤이 무엇 때문에 시인을 음악가를 구제불능의 추방대상으로 여겼겠는가? 플라톤이 생각하기에 음악은 절대로 메타화 될 수 없는 존재로 수학이나 기하학과는 비교조차 될 수 없는 천한 대상이었다. 안타깝게도 플라톤 시절에는 악보가 없었으니 말이다. 만약 악보만 있었더라면 플라톤도 당장 음악의 이데아를 만들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래서 음악을 원통과 삼각형과 직각사각형으로 환원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 즉 누군가가 그 음악의 이데아를 악보로 구현하는 순간, 그 순간이 안타깝게도 나머지 음악과 음악가는 최고선의 음악 한 곡만을 남겨놓고, 모조리 폐기처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불완전한 음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표준화, 즉 계몽의 길에 나선 인간에게 불완전함이란 곧 결함이며, 이는 곧 악이다.

바로 이 지점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우리는 스트라빈스키가 말한 “모든 음악은 바흐로 돌아가야 한다.”라는 말의 의미를 깨달을 수가 있게 된다. 이 말은 달리 말하면 “모든 음악은 이데아만 찾을 수 있다면 다 그것을 모방해야 한다.”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스트라빈스키는 바흐의 음악이야 말로 순수하게 상징화된 음악의 이데아로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 상징이 되어버리면 그것은 그만큼 실체와는 멀어진다는 슬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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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굴드 vs 컴퓨터
클래식 이야기 | 2008년 09월 28일 20시 32분

10여년 전에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바흐, 바그너, 모차르트 애호가들 사이에 논쟁이 붙었다. 그 논쟁은 나중에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져서 결국 그 음악 동호회가 폭파되는 결과까지 불러왔다. 이때 바흐, 바그너 파(?)가 한 편이 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 우상의 정교하게 계산되고, 한치의 오차도 없고, 분석하면 분석할수록 더 많은 분석거리를 제공하는 그 세심한 짜임에 대해 이야기 했다. 거기에 비하면 모차르트의 음악은 단순하고, 그 가치도 항상 "뉘앙스", "아우라"같은 추상적이고 입증불가한 근거에 의해서만 평가받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논쟁을 보면서 그들이 어쩔수 없는 근대인들임을 느꼈다. 그런 예리한 분석적 속성이 어떤 음악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한다면, 즉 베버가 말한 도구적 합리성으로 음악의 가치를 결정하려 한다면 갈수록 음악은 그것이 실제로 연주되고, 수용되고 사용되는 생활세계로부터 벌어질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화성학적으로, 대위법적으로 오묘한 작품이지만, 음악으로서는 전혀 사용되지 않는 그런 작품들이 음악가들의 세게에서 높이 평가받게 될지도 모른다. 어떤 면에서는 안톤 베베른이 그런 음악의 전형이 아닌가?

어쨌든 나는 분석적인 측면을 들어서 음악의 우열을 논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매우 걱정스럽고, 자칫 음악에서의 계몽의 변증법이 될까 두렵다. 그 귀결은 무엇일까? 바로 다음의 연주다.  이 연주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연주자가 과연 누구일까? 정답은 다 듣고 나면 가르쳐 주겠다.




먼저것의 연주자는 바로 컴퓨터다. 컴퓨터가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글렌굴드의 음반을 분석해서 건반 누르는 강도, 길이, 페달시간 등을 수치화한 뒤 기계적으로 피아노를 연주시킨 것이다.


아래 것은 글렌 굴드의 연주다.

이 둘의 차이가 있다 없다를 놓고 논란이 많이 있었는데, 음악 평론가나 학자들은 "글렌굴드의 연주와 같은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느낌이 다르다"식의 "비분석적"이유를 들어 비판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연주를 듣고 나서 나는 소름이 돋았다. 이런식으로 글렌 굴드 뿐 아니라 클라라 하스킬, 디누 리파티, 게자 안다 등의 전설적인 피아니스트를 데이터베이스화하면, 우리는 앞으로 인간 피아니스트의 존재를 완전히 컴퓨터에게 대체시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앞의 연주가 실제 글렌굴드의 연주보다 모자란 면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던, 현재 저 컴퓨터보다 바흐를 더 훌륭하게 연주할 수 있는 피아니스트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기에, 디누 리파티의 쇼팽, 게자 안다의 바르톡, 하스킬의 모차르트, 길레스의 베토벤 연주를 컴퓨터에 입력시키면, 우리는 피아노 혼자 최고수준의 연주를 입력된 데이터에 따라 언제나 같은 퀄리티로 들려주는 엽기적인 풍경에 직면할 것이다. 개런티가 들지 않으니 음악회 티켓도 저렴해 질것이고, 그렇게 되면 전설적 연주자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게다가 컨디션에 따라 실수마저 하는,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인간 피아니스트들은 대체 어떤 무대에 서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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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CH2138 2008년 10월 03일 00시 32분
굴드 팔아먹는 상술의 연장선이라 봅니다.

그럴싸하게 흉내낸 모조품에 불과하지요. 기도 안 찬건 완전히 다른 모조의 이런 음악에 동조하며
음반 내지에 글 쓴 사람입니다. 정신상태가 의심되더군요.

이런 음반을 진짜 음반의 가격으로 버젖이 팔아먹는 소니의 상술에 혀를 차게 만들죠.

그동안 굴드를 얼마나 울거 먹었습니까. 허접한 표지로 만들었다가 오리지널 자켓이란 명목으로
또 껍질만 바꾸고 말이죠......
 디누리파티 2008년 10월 03일 23시 13분  
  기가 막힌것은 본문에도 언급했듯이, 굴드와 비슷한가 여부가 아니라, 그 연주 자체의 퀄리티였습니다. 들어보셨겠지만, 정말 잘 치는 피아노거든요. 굴드는 그래도 오리지널 음반이 음질이 좋아서 비교가 가능하지만 30년대 음반들, 예컨대 알프레드 코르토, 아르투르 쉬나벨 같은 연주자들을 저런 식으로 복원한다면, 소름이 좍좍 끼칩니다. 상고할 길이 없죠.
 BACH2138 2008년 10월 04일 10시 04분
맞습니다. 말씀처럼, 정말 잘 치죠. 기교가 굴드나 그밖의 대가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봅니다.
굴드의 모습에다가 하이페츠같은 차가움을 덧씌운 미디음악같은 국적 불문의 연주랄까요.
굴드를 복원했다고 호들갑떠는 일부 사람들이 전 정말 이상하게 느껴지더군요. 특히 이런 걸 기획한 음반관계자들의 불순한 의도가 찜찜하더군요. 그들의 돈 논리를 보면 예술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더군요. 일전에 유명 모차르트 연주 단체를 사칭한 외국의 사기꾼에게 국내음악계 일부가 사기당한 어떤 연주회가 생각나더군요.
 디누리파티 2008년 10월 05일 00시 06분  
  의도야 뭐 보나마나, 요즘 연주자들은 스타성이 부족하고(벤야민 용어를 빌리면 아우라가 없음), 옛 거장들의 연주는 음질이 안습인데,복각에도 한계가 있고.... 그렇다면 충분히 시장이 성립이 되죠.센세이션과 기술과 자본의 궁합.. 제가 바르톡이 연주한 바르톡, 쇼스타코비치가 연주한 쇼스타코비치를 가지고 있는데, 이거 프로그래밍 할 수 있으면 엄청 상품 되겠죠?
 BlogIcon Sid S. Jeong 2008년 10월 23일 01시 28분
결정적으로 굴드의 흥얼거림이 빠졌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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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소리가 있었다- 음악의 발생학(1)
클래식 이야기 | 2008년 09월 24일 21시 34분

태초에 소리가 있었다

 

성경에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존재론적으로 심각한 문제에 직면한다. 말씀은 그 발생학적 순서상 소리에 뒤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구절은 바뀌어야 한다. 태초에 소리가 있었다. 인간은 아득한 옛날부터 소리와 함께 살았다. 화산이 터지는 소리. 비가 쏟아지는 소리. 파도치는 소리. 짐승들이 울부짓는 소리. 벼락 치는 소리. 좌우지간 온 갖가지 소리가 있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공기를 통하여 전달되는 온 갖가지 파동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 파동들을 통하여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위험을 예측하거나, 먹을거리(먹거리란 말은 문법적으로 틀립니다. 먹을거리란 말을 씁시다. 바른말 고운말)를 찾거나, 서로 동료들을 알아보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사람들은 이 파동들이 자신들의 감정에 묘하게 작용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울하게 하는 밝기, 기분 좋게 하는 밝기, 경쾌하게 느끼는 온도, 짜증나게 만드는 온도가 있듯이, 소리라고 부르는 이 파동도 어떻게 내느냐에 따라 기쁘게도, 슬프게도, 즐겁게도, 고통스럽게도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자신들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표현하고 조작하는데 소리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주: 인지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감정, 즉 대뇌 변연계에 활발한 변화를 야기하는 감각은 시각>청각>후각>촉각 순이지만, 사실상 인간의 복잡미묘한 감정을 감당할 수 있는 감각은 청각이라고 한다. 후각은 금새 마비되어버리기 때문에 너무 지속성이 없고, 촉각은 너무 단순하여 복잡미묘함이 부족하며, 시각은 인간의 감각 중 가장 지적이고 구체적인 감각이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있는 청각이야 말로 충분히 복잡하고 구체적이면서도 시각과 달리 추상적이고 감성적인 절묘한 위치에 있는 감각인 것이다. )

그 다음에 사람들은 무엇을 했을까? 불을 이용해 자신들이 원하는 온도를 인위적으로 만들고, 조명을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빛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내었듯이 사람들은 그런 소리들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려 하였다. 보기에 좋은것, 즐거운 것만 보고 싶다는 욕망이 미술을 만들었듯이 듣기에 좋은 소리, 그리하여 유쾌한 감정만 느끼고 싶다는 욕망이 음악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또한 음악은 이러한 감정을 공유함으로써 공통감을 만들어내는데 기여하였다. 루소가 최초의 언어는 노래였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의미였으리라. 인간의 언어가 서로간의 공통감을 생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그 최초의 형태는 구체적인 메세지를 담고 있는 그런 언어가 아니라, 단지 감정적 진폭만을 담고 있는 음악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원시적인 부족일수록 노래와 담화의 구별이 모호하며, 사실상 노래에 가깝다. 이렇게 인간은 소리를 조작함으로써 좋은 감정을 만들어낼 뿐 아니라, 이를 타인에게도 전달하여 좋은 공통감, 즉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울 수도 있다. 물론 이 가설은 최초의 언어가 공동의 세계를 만들어 소통하는 도구였다는 하버마스를 따를 때 가능하다. 최초의 언어가 타인을 조작하고 지배하기 위한 명령어였을 것이라 주장하는 들뢰즈를 따른다면, 음악의 설 자리는 없다.

이것은 사람뿐 아니라 신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실제 성경에는 하느님의 예술적 경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신은 왜 세상을 만들었을까? 성경에 나오는 답은 이렇다. “ 보시니 좋더라.” 하느님은 세상을 예술작품으로 창조한 것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보기에 좋기 때문에 만든 것이다. 그러니 성경에 따르면 이 세상은 신의 일종의 즉흥연주다. 그래서일까? 판타지 소설 “나니아 연대기”에서는 위대한 사자 아슬란이 “노래”로 세상을 창조하고 있다.

이렇듯 신이 예술적이니, 즉 유쾌한 감정을 느끼고 유지하고자 하니, 그 신의 영혼의 입김을 부어 받은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필경 사람들은 세상의 여러 소리들을 듣기에 좋은 것과 나쁜 것, 그리고 기타 여러 가지 종류에 따라 분류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듣기에 좋은 소리를 내는 여러 경우들을 나름 데이터 베이스화 했을 것이며, 후손에게 전승했을 것이다. 이를 위해 그 데이터는 컴퓨터가 없던 시절의 슈퍼 컴퓨터 역할을 대신 하던 노인의 머리 속에 저장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테이타 베이스의 출력 도구로서 언제든지 저장된 듣기 좋은 소리를 인위적으로 낼 수 있는 도구, 즉 악기를 만들어서 자연에서 저절로 그 소리가 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원할 때면 언제든지 그 소리를 만들어 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인류가 유희라고 하는 것을 시작하면서부터 인류는 이 소리의 성질을 유희에 이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실, 유희의 역사는 상상보다 훨씬 길 것이다. 대부분의 포유동물들이 유희의 개념을 알고 있다. 개와 고양이를 보라. 어쨌든 인류는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된 듣기 좋은 소리들을 갖가지 방법으로 모방하려고 했을 것이다. 물론 가장 많이 사용된 도구는 자신의 성대였을 것이다. 그리고 차츰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들을 이용해 악기를 사용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사람들은 음악이라는 것이 기분을 좋게 만들기만 하는 게 아니라 온갖가지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는 것을 차츰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도구들을 어떤 식으로 다루면 어떤 성질의 소리가 나는지 오랜 역사적인 경험을 통해 축적했을 것이다.

실제로 사회를 이루고 사는 인간에게는 듣기에 좋은 소리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혹은 인간이 사회생활을 할 때 소통적 행위만 하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상대방, 혹은 집단을 대상으로 다양한 감정을 조작할 필요도 생긴다. 즉 전략적 행위가 요구될 때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다양한 감정의 조작을 위해 소리가 유용하게 활용 될 수 있음은 이미 문자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널리 알려져 있었다. 예를 들면 전투를 하기 전에 사람들의 호승심을 일으키기 위해 타악기를 두드리는 것은 세계 모든 나라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걸 우연의 일치라고 보는 것 보다는 타악기의 소리 속에 사람의 심정을 씩씩하고 호전적으로 만드는 성질이 있음을 경험적으로 파악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한결 합리적이다.

물론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만 음악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어떤 신성함, 숭고함을 통한 집단적 일체감을 일깨우고 이를 통해 사회의 질서를 유지 할 때도 특별한 종류의 소리는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또 평소에 두렵다고 느꼈던 소리들을 흉내 냄으로써 그 두려움의 대상을 무력화시킬수 있다고 믿는 주술의 도구로도 소리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성질을 사용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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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그 존재론적 모순 (2)
클래식 이야기 | 2008년 09월 23일 13시 08분

플라톤과 피타고라스. 이 두 현자들의 음악관은 기술적 의미를 넘어 그대로 평가적 의미까지 가지게 된다. 즉 음악가가 지녀야 하는 혹은 지녔다고 간주되는 전형적인 자질이나 속성, 즉 그가 제대로 된 음악가인가를 판단하는 준거로도 사용되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적 측면에서도 두 사람의 견해는 정 반대가 된다. 플라톤이 생각한 타고난 음악가는(부정적 의미지만) 규율과 속박을 싫어하고, 정열이 과도하게 넘쳐서 간혹 정신이 나가기도 하는, 즉 자주 신들리는 그런 사람이다. 이런 견해는 오늘날까지도 가장 강력한 예술가 상으로 남아있다. 베토벤이나 반 고호의 과장된 초상화들 속에, 엄청나게 화려하게 포장된 푸시킨이나 바이런의 그 많은 일화들 속에, 이중섭이나 이상의 신화들 속에, 파가니니나 리스트의 귀신같은 모습 속에 말이다. 반면에 피타고라스가 생각한 타고난 음악가는(그에게는 긍정적 의미) 무질서한 소리들을 수학적 규칙을 통하여 조화롭게 재구성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역시 오늘날까지도 강력한 예술가 상으로 남아있다. 바하나 괴테의 그 심각한 모습의 초상화 속에, 마치 성자와 같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자화상 속에, 지휘봉을 마치 정교한 실험도구처럼 들고 있는 카를 뵘이나 빌헬름 프루트벵글러의 사진 속에, 파블로 카잘스나 아르뚜르 루빈시타인의 마치 철학과 교수 같은 경건하고 매서운 모습 속에.

그렇다면, 이 둘 중 어느 것이 음악의 진짜 모습일까? 플라톤과 피타고라스. 지명도에서나 내공에서나 서로 만만치 않은 고대의 두 거인들. 과연 누가 음악을 잘못 바라본 것일까? 이게 화끈하게 결론이 나버리면 참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둘 다 옳고, 또한 둘 다 틀리다. 한마디로 둘 다 우리가 음악이라고 부르는 현상을 잘 설명하고 있다.

아니, 기껏 플라톤이니 피타고라스니 끌어들이더니 결국은 불가지론 아니면 상대론이라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그러나, 나를 탓하지 마시라. 그래서 애초부터 존재론적인 모순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모순. 얼마나 편리한 말인가? 게다가 존재론적인 모순이라니. 이거야말로 세상의 모든 무지와 불가지론을 가장 멋지게 포장할 수 있는 근사한 수사법이 아닌가?

그러나, 이쯤에서 난 모순에 더 이상 기대지 않으려고 한다. 마르크스가 저승에서 내 뺨을 갈기려고 달려오는 것이 느껴진다. 아, 그가 뭐라고 나를 비난하고 있다. 뭐, 모순이란 용어를 더럽히지 말라고? 아, 그러니까, 대립되는 존재가 서로 투쟁하는 과정 중에 새로이 발전되어나가는 것이 모순이라고? 그러니까. 미래에의 전망이나, 단초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 아니라 단지 부정이라고? 허, 거 참 따지기는. 그러나 일리는 있다. 발전의 단초라.

단초를 찾아보자. 이 모순을 해결해서 종합으로 나아 갈 수 있는 단초를. 종합이라는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나의 정신적 멘토인 아도르노가 매섭게 나를 째려보지만, 일단 모른 척 하자. 왜냐하면 내가 탐구하는 방법, 나의 사유 방법은 항상 그의 ‘부정변증법’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 단초는 바로 플라톤과 피타고라스 두 현자가 모두 빼먹은 관점이 있다는 것이다. 즉 플라톤의 체계에서도, 피타고라스의 체계에서도 공통적으로 결여된 관점이 있다는 것이다. 정 반대의 주장을 편 두 사람은 과연 공통적으로 무엇을 빠뜨렸을까? 그것은 바로 음악이란 사물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라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점이다. 플라톤의 입장에서는 음악은 귀신의 장난이었고, 피타고라스의 입장에서는 음악은 태초에 이미 확고하게 존재한 법칙이었다. 그렇다면 음악가나 음악을 듣는 청중은 무엇인가?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지만 쇼펜하우어 이전까지 수많은 철학자와 미학자들은 늘 음악을 작곡자의 입장에서만 설명했다. 그리고 청중은 늘 수동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음악의 실제 현상화는 어디에서 이루어지는가? 음악은 귀를 통해 청취자의 대뇌 속에서 어떤 반응을 야기 시킬 때 비로소 음악이 된다. 음악은 기본적으로 듣는 것이지 쓰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음악의 본질은 뮤즈에게 있는 것도 아니고, 태초의 법칙에 있는 것도 아니며 오늘날도 꾸준히 음악을 듣고 있는 나를 포함한 모든 청취하는 사람들의 뇌 속에 있는 것이다.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음악이라고 하는 행위를 만들어 내었고, 그 행위의 결과를 즐기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행위의 의미 또한 사람들의 일상적으로 음악을 듣는 생활 속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좀 더 현실적이 되어서 즉 청중의 입장이 되어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하여 음악을 듣는가?” 나 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래저래 따져보면 결국은 플라톤이 우려하는 바로 그 열광을 얻기 위해서 음악을 듣지, 직각이등변삼각형과 장음계와의 연관성을 통한 행성의 궤도증명을 하자고 음악을 듣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일단 플라톤의 판정승이라고 해도 좋을까?

유감스럽게도 아니다. 음악을 만드는 이, 즉 작곡가나 연주자에게 물어본다면 전혀 다른 대답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작곡자나 연주자에게는 음악이라는 것이 유희나 해방이 아니라 최악의 경우에는 일종의 노가다일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노가다의 결과물을 일반 대중들은 해방의 도구로 접수하는 것이다. 메탈리카의 공연에서 머리를 풀어 헤치고 열광하는 청중들은 메탈리카의 음악이 얼마나 정교하게 계산된 방정식인가를, 그래서 메탈리카가 얼마나 초긴장 상태에서 소리 하나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우는지(비록 입으로는 다 같이 로큰롤! 놀자!라고 하지만) 왕왕 망각한다.

결국 플라톤과 피타고라스가 비긴 셈이다. 음악은 결국 플라톤 적인 요소를 내용으로 삼고 피타고라스적인 요소를 형상으로 삼아 형성된 모순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둘 중 하나만 빠져도 음악이 성립되지 않는다. 플라톤만 존재하는 음악은 괴성과 광성의 연속일 뿐이고 피타고라스만 있는 음악은 따분한 음향 실험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감상자는 플라톤을 요구하고 작곡자는 피타고라스에 의지한다.

즉, 감상자와 작곡가가 음악을 하는 목적이나 태도가 애시당초 아예 다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예술분야에 있어서도 그렇겠지만. 어떤 의미에서 오늘날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창조자가 되기보다는 감상자가 된다. 작곡은 그것과 다른 별도의 일이 되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겨났을까?

사실 우리는 무의식중에 플라톤적인 열광을 음악의 본질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나도 역시 그런 무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실제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음악의 역사는 플라톤을 쳐부수는 피타고라스 승리의 역사였다. 이게 점점 자라서 문제가 된 것이다. 피타고라스는 음악을 살찌웠고, 그리고 나서는 음악의 목을 조르고 있다. 마치 아이들을 살찌운 뒤 잡아먹는 마녀처럼. 오, 무시무시한 피타고라스. 피타고라스는 실제로 밀교 집단의 우두머리였고, 집단의 비밀을 누설한 자는 가차없이 숨통을 끊었다고 하는데, 음악이 무슨 죄가 있다고....그런데, 잠깐 여담....자, 이쯤되면 내가 아도르노의 방법론을 따라가고 있음이 느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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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둥근사각형 2008년 09월 23일 15시 38분
플라톤과 피타고사스 대신, (평가) 내용과 (평가) 형식이란 단어를 넣어도 무방할 듯 하네요. ^^. 그럼 평가도 존재론적 모순인가? ㅋ
 BlogIcon 디누리빠띠 2008년 09월 23일 18시 42분  
  모순일수 밖에요. 아무리 형식을 꽉꽉 채워도 그 외부에 또 다른 내용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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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그 존재론적 모순(1)
클래식 이야기 | 2008년 09월 21일 22시 12분

 

음악, 그 존재론적인 모순

 일찌기 화이트헤드가 서양의 모든 철학이 그에 대한 주석에 불과하다고까지 말했던 플라톤은 그의 대표작인 ‘공화국’에서 모든 서사 시인들을 폴리스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아, 영리하게도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서 말이다. 플라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저작인 ‘이온’에서는 비극 시인과 서정 시인들을 매섭게 공격한다. 서사 시인들은 그럴듯한 이야기를 꾸며대어 사실을 호도하기 때문에 위험한 사람들이며, 서정 시인들은 건전한 이성을 혼란케 하는 지나친 정념에 사로잡힌 존재들이라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플라톤이 시인이라고 부른 사람들은 오늘날의 시인, 문학가와는 별 관계가 없다. 당시 시인이란 직접 노래를 만들어서 즉흥적으로 부르는 사람들을 통칭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굳이 요즘말로 한다면 싱어 송 라이터라고 할까? 밥 딜런이나 닐 영이 플라톤적인 의미에서의 시인에 가깝다. 따라서 플라톤이 말한 시인은 문학가가 아니라 음악가다. 당시 문학가는 주로 헤로도투스나 투키디데스 같은 저술가들이나 사용 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단어였다. 플라톤은 여기에서 서사적인 예술과 서정적인 예술 전반을 공격한 것이며, 특히 음악과 결합된 예술을 공격한 것이다.

오늘날은 교양 있는 척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필수 아이템인 음악을, 그래서 3류 치정극도 주인공이 음악가가 되면 난데없이 수준 높은 드라마로 변신하는(아 꼭 베토벤 바이러스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그 음악을, 고명하시고 덕망 높으신 플라톤 선생께서는 왜 이리도 싫어하신 것일까?(물론 플라톤은 국가의 수호자 교육에서 당시 그리스 전통에 따라 플루트 교육을 정식으로 배치해서 사람을 헷갈리게 만들지만). 선생의 한마디를 들어보자. 편의상 내가 좀 거칠게 뜯어 고쳤다.

“시인이란 뮤즈-음악의 여신-에 사로잡힌 자들이다...... 뮤즈에 사로잡혀 완전히 제정신이 아닌 상태를 코레이아(일종의 열광이라고 하자)라고 하며, 음악이란 (원문에선 서정시) 바로 이 코레이아의 산물이다. 한마디로 음악이란 정신 나간 상태에서 귀신들린 소리이며, 사이비 골수 개독들이 잘 내지르는 이른바 방언과 비슷한 것이다.”

자. 이제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 플라톤이 구상했던 이상적인 폴리스는 타고난 이성을 갈고 닦아, 세상의 모든 원리를 완전히 관통하는 그야말로 순수하고 무조건 옳을 수밖에 없는 그런 법칙, 즉 이데아를 관조할 수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다스려지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그가 바라본 가장 아름다운 세상은 당연히 순수 합리의 세계인 수학의 세계이다. 그런데 음악이란? 정신 나간 사람들이 귀신들린 상태에서 내지르는 마성이고 귀곡성이며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성을 상실하고 방탕한 마음상태로 만들어버리는 독약일 뿐이다. 이 점이 중요하다. 자기 혼자 비이성적인 열광의 상태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같이 빠져들게 하는 집단 광란의 도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음악은 시민들의 이성적 판단을 가로막는 적이 되는 것이다. 니체의 말을 빌리자면 플라톤은 음악에서 정확하게 “디오니소스의 세계”를 보고 있는 것이며, “아폴론의 세계”를 세우고자 하는 자신의 기획의 가장 큰 방해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만약 1960년대 미국이나 유럽의 록 공연에서 볼 수 있는 그 오도방정 완전개판(어른들의 눈으로)의 모습을 플라톤이 본다면 “그래. 바로 저것 때문에 내가 음악을 두려워하는 것이야.”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로 플라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음악이 오도방정의 상태를 만든다는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 더하여 정치적 선동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고, 그럼으로써 중우정치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즉, 이렇게 코레이아 상태에 빠진 사람들은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며, 급기야 잘못된 사실과 이야기를 확신의 대상으로 삼아버린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 때문에 플라톤은 아주 어렵게, 자신의 젊은 시절 우상이었던 호메로스의 작품들조차 폴리스에서 추방하기로 결심한다. 그것이 아름답고 매혹적이기 때문이며, 그래서 그 속에 기록된 허구적인 역사와 허구적인 신화가 사실로 그럴듯하게 각인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히틀러가 플라톤의 우려가 결코 기우가 아니었음을 실제로 증명해 보였다. 또한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바그너의 음악을 틀어놓고 살육을 즐기는 장군의 섬찟한 모습을 통해서도 그러한 사실은 증명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플라톤이 두려워 한 것은, 음악이 가지고 있는 감정 조작적 속성이었다. 음악은 감정을 조절하고 그것을 극대화함으로써, 이성까지 마비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감정 조작적 속성이 마냥 선전, 선동의 도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음악의 속성은 또한 도전적이고 전복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무력 앞에 굴복한 노예들의 마비된 의식 속에 어떤 이성적인 설복으로도 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을 불어 넣어줄 수도 있는 것이다. 영화 “쇼 생크 탈출”에 보면 폭력과 명령에 복종하는데 완전히 길들여진 죄수들이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자유를 순간적이나마 갈망하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감옥이라는 제도는 사실상 무너지는 것이다. 또 영화 “라스트 액션 히어로”에는 막강하고 거친 액션 주인공인 쉬왈쩨네거가 피가로의 결혼을 들으면서 부드러운 남자로 변모한다. 이렇게 되면 액션영화의 세계는 전복되고 만다. 혹은 그 유명한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에서 바빌론으로 끌려간 히브리인들의 합창은 어떠한가? 이것을 오스트리아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이탈리아인들의 열망과 연결시키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며, 그 오페라를 관람한 거의 모든 이탈리아인들은 특별한 해설없이 이를 직관했다. 완고한 노예제 옹호자였던 플라톤이 실제로 두려워 한 것은 바로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감쪽같이 이를 폴리스 전체의 이해관계로 포장한 것이다.

어쨌건 우리는 플라톤이 두려워했던 것을 통하여 음악의 중요한 속성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현인이란 반드시 옳기 때문에 현인이 아니다. 그는 틀리기도 하고, 교활하게 사실을 왜곡하기도 하지만 그가 그릇된 결론에 이르게 된 과정, 혹은 왜곡에 동원한 수법이 또한 가르침이 되기 때문에 현인인 것이다. 따라서 플라톤은 현인임에 분명하다. 그가 두려워한 나머지 히스테리에 가까울 정도로 왜곡한 사실 속에서 음악의 중요한 속성을 유추해 낼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두려워한 바 음악의 속성, 그것은 모든 기성의 굳어진 사고를 집어던지고(현상학자들 말대로라면 판단중지), 그것을 음악에 맡겨버리는 열광을 통한 해방감과 그 감정의 집단 전이였던 것이다. 음악의 이러한 속성을 반드시 정확한 의미는 아니지만 흔히 쓰이는 용례대로 “디오니소스적 열광”이라 부르기로 하자.

 이제 기왕 플라톤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 김에 그리스 노인분을 한 사람 더 초대하기로 하자. 플라톤을 전후하여 음악에 대하여 많은 연구를 한 사람을 열심히 뒤지다가 보면 수학 선생님들 한테는 좀 황당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단연 피타고라스의 이름 앞에 눈이 가서 멈추게 된다. 더욱이 흥미로운 사실은 피타고라스는 플라톤과 정 반대의 관점에서 음악을 바라본다는 점이다.

음악이라면 진저리를 쳤던 플라톤과 달리 피타고라스에게 음악은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는 최고로 조화로운 세계의 표식이었다. 그는 음악이 조화의 세계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음계와 음정 등을 수학적으로 풀이해 내었다. 즉, 시인들이 정신 나가서 마구 내지르는 그 소리가 가만히 뜯어보니, 어떤 수학자의 공식보다도 정확한 조화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그래서 피타고라스는 존재하는 모든 음악을 수학공식으로 환원시키는 일을 거의 필생의 작업으로 삼다시피 했다.

그런데 실제로 음악에는 그런 수학적인 신비함이 있다. 예컨대 ‘도’ 소리를 내는 현의 길이를 절반으로 줄이면 한 옥타브 위의 도가 된다. 그러니까 현의 길이를 계속 1/2, 1/4, 1/8로 줄이면 여전히 높이만 다르지 같은 음정이 나오는 것이다. 1/3로 줄이면 레가 되고 1/5로 줄이면 솔이 된다. 이런 방법으로 1/12까지 만들 수 있고 그 결과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음계를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오묘한 조화의 세계인가? 음악은 사실상 수학적으로 짜여진 법칙의 세계인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피타고라스는 음악이야말로 소우주이며 모든 법칙과 조화의 총아임을 확신했고 결국 “우주는 거대한 교향곡이다.”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피타고라스가 자신의 도를 완전히 완성해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정말로 교향곡을 들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물론 피타고라스한테 물어보면 “네 귀에는 안 들리지만 내 귀에는 들린다”라고 했을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플라톤과 달리 그는 음악을 무질서와 혼돈이 아니라 조화의 극치로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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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지판투테를 보는 어린이
클래식 이야기 | 2008년 09월 19일 13시 36분
오페라 하우스의 엄마들. 그리고 거기서 몸을 뒤틀며 소음을 만들어내는 아이들. 그리고 분위기 잡친 청중들..... 한국에만 볼수 있는 괴이한 현상이다. 그 엄마들의 속셈은 무엇일까? 아마 세계 명작이니 무조건 들려야 한다. 그 놈의 세계명작.

그래서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앉혀놓고 귀에 고문을 강요한다. 아이들은 칭얼대고 뒤척이고, 주변의 진지한 청중들은 짜증이 난다. 몇만원을 들여서 나온 자리인데 저 아이들이 내는 소음때문에 감상이 엉망이되고 있다. 이게 말이나 되는가?

명작을 쑤셔넣기 식으로 감상시킬수 있다는 저 믿음, 억지로 쑤셔 넣어도 명작이니까 뭔가 좋을 것이라는 저 괴상한 신념은 대체 어디서 나왔단 말인가? 그런데 무대에서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코지판투테"가 진행되고 있다. 이 오페라의 주된 내용이 뭔지 알기나 하나? 그건 스와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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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말이다. 물론 음란한 의미로 이 주제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정절이니 정조니 정숙이니 하는 부르주아의 도덕을 야유하면서 인간에 대한 진실, 자신에게 솔직함의 새로운 도덕을 역설하는 고차원적인 주제이긴 하지만, 어쨌든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건은 스와핑이다.

저 아이들이 뭘 이해할수 있을까? 스와핑, 아니면 억지 도덕을 초월한 진실한 도덕?
하긴 말러 교향곡 연주하는 음악회에 6살짜리 아이 데려와서 아이는 징징대고 부모는 쿨쿨 골아떨어진 참변을 본 적도 있으니...
내가 알지 못하고,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것을 타인의 기준, 타인의 평가에 의해 자식들에게 강요하는 저 비주체적인 부모들을 보고 누가 부모님 은혜 운운하겠는가? 무지한 사랑은 차라리 지혜로운 학대만도 못한것을...

기왕 얘기 나온 김에 코지판투테에서 한 곡. 피오르딜리지가 유혹에 넘어가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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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미운 천재 미하일 플레트네프
클래식 이야기 | 2008년 09월 16일 22시 26분
디누 리파티 이후 그의 포스를 대체할만한 피아니스트는 나오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EMI에서 짝퉁 디누리파티 음반을 발매하다 걸려서 망신을 당했을까? 그러나 20세기 후반이 다 되어서야 그런 포스를 가진 피아니스트를 다시 만나게 되는데, 바로 미하일 플레트네프다.

2005년의 일이다. 6년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미하일 플레트네프의 피아노 독주회를 갔다. 6년 전에 공연 도중 기침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짜증을 숨기지 않은 이 성격 까다롭고 민감한 천재는 공연 시작하기 전 부터 그 성깔을 유감없이 드러내었다.

공연 시작한 다음에 뒤늦게 들어오기 일쑤인 몰지각한 청중을 의식해서 아예 공연시간을 20시로 30분 늦추었다. 그리고 신경 거슬리는 기침소리들을 의식해서 악장과 악장 사이에 전혀 인터벌을 두지 않고 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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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연주는 한 마디로 연습해서 할 수 있는 연주가 아니었다. 첫번째 곡목인 베토벤의 7번 소나타. 1악장에서는 마치 수학공식처럼 피아노 소리를 정교하게 재구성한 그는 2악장에서는 폐부를 찔러대는 깊은 정서로 노래했다. 그리고 3악장에서는 미뉴엣이 단지 춤곡이 아님을 증명했고, 4악장에서는 프레스토 템포로도 여유있게 노래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그런데 그 다음 순간 사단이 일어났다. 원래 공연에 늦으면 인터미션때 입장해야 하고 1부 공연은 포기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우리나라에서는 1부 첫번째 순서가 끝나면 입장을 시킨다. 그 순간의 어수선함은 정말 화가날 정도다. 이는 나 뿐 아니라 플레트네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7번 소나타의 마지막 악장이 끝나고 당연히 박수가 나와야 할 상황인데 그는 1초의 짬도 두지 않고 바로 8번 소나타 연주를 시작했다. 중간입장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그런데 몰지각한 홀 매니저가 입장을 시켜버렸다. 이제 큰 일이 났다. 저 성질 까다로운 천재가 연주를 하고 있는 상황인데 무려 200여명이나 되는 지각생들이 우르르 입장하고, 구두소리를 딸깍이고 휴대폰 소리를 냈던 것이다.

일이 벌어졌다. 피아노, 지휘, 작곡 세 분야에서 세계 정상을 지키고 있는 가히 음악계의 황제라 할 만한 그리고 그런 만큼 겸손함을 전혀 미덕이라 생각하지 않는 오만한 천재가 웅성거리며 서성대는 청중들 사이에서 연주해야하는 기막힌 상황에 처한 것이다. 내심 나는 저 예민한 인물이 화를 버럭내며 연주를 중단하고 퇴장하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실제 그의 얼굴에는 짜증과 분노가 가득했다. 그러나 그는 그 짜증과 분노를 엉뚱하게 표현했다. 바로 연주로!

그가 연주한 베토벤 8번 소나타는 여태까지 들었던 그 어떤 연주보다 빨랐다. 프레이징은 기존의 정석과 너무나 동떨어졌고, 터치 하나하나마다 짜증이 느껴졌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짜증과 분노를 연주했다. 사실 그 순간 플레트네프는 한시라도 빨리 이 몰지각한 청중 앞에서 연주해야 하는 상황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 외에는 전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방법은 단 하나 빠른 템포로 가볍게 연주하는 것. 정상 속도보다 1.5배 빠르게 연주하는 베토벤 8번 소나타는 '비창'이 아니라 '짜증'으로 닉네임이 바뀌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분명 플레트네프는 짜증스런 상태에서 한시라도 빨리 연주를 끝내려고 가벼운 터치로 빠르게 연주했다. 그런데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새로운 해석으로 들리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에는 일점 반획의 오차도 없었고, 밸런싱과 프레이징은 완벽했고, 심지어는 자신의 짜증마저 표현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천재로 태어난 자의 비운이다. 천재의 정서는 표현되는 순간 사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인 표현이 되어버린다. 화를 내던 슬퍼하던, 짜증을 내던, 공포를 느끼던, 그것이 표현되는 순간, 일반인들은 그것을 감상한다. 화를 내면 그 격렬함의 파도를 즐기고, 슬퍼하면 그 비극적 정서를 즐긴다. 불행히도 일반인은 천재의 즐거움이란 정서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바로 저 플레트네프의 짜증처럼 천재의 부정적인 정서를 좋아한다.

그의 짜증은 정말 경이로웠고 또 아름다웠다.

그리고 2부... 쇼팽의 24개 전주곡을 연주한 2부는 너무도 훌륭한 연주였기에 따로 서술하지 않겠다. 그리고 몰지각한 청중들이 시계를 보며 미리 퇴장해 버린 다음 커튼콜을 계속하고 있는 진짜배기 청중들에게 선사한 기나긴 앵콜 공연에서 보여준 그의 연주는 전율스러웠다.

아마도 피아노 공부하는 사람에게 미하일 플레트네프라고 하는 이름은 영원한 저주이자 경외이자 증오의 대상이 될 것이다.

참고로, 그는 두시간에 달하는 공연 내내 단 하나의 미스터치도 범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한국에 도착 한 뒤 단 한번도 연습이나 리허설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단하다 못해 얄미운 존재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제 50대가 된 플레트네프는 피아노에 손을 잘 대지 않는다. 이제 그는 지휘자가 되었다. 에셴바흐에 이허 또 한명의 아까운 피아니스트가 지휘대에 흡수되었다. 대체 왜들 그러는지. 쩝.
여기서 플레트네프의 연주 한 자락. 차이코프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의 3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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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음악가들이 언급되어서...
Tracked from: 김너굴네 집 2009년 02월 18일 05시 56분

 BlogIcon 저녁놀 2008년 10월 16일 13시 20분
스토리가 너무 재미있네요. 티스토리에 스크랩을 어떻게 하는지 잘 몰라서...
출처 밝히고 퍼갑니다. 원치 않으시면 바로 내려드릴께요.
사실 전 베토벤바이러스 => 노다메칸타빌레 =>피아노 협주곡=>라흐마니노프
이렇게 연결연결 하다보니 어찌하다 미하일의 피아노 영상을 보게 되었고...
궁금해서 찾아보다 이런 스토리를 보게 되었네요...
남편이 런던있을 때 명반 산다고 어쩌고 저쩌고 하며 돌아다닐때는
관심도 없었는데... 암튼 좋은글 감사해요
 pastcloud 2008년 12월 05일 19시 21분
역시나 한치의 오차도 없는 깔끔,정밀,세련된 음악이네요. 플레트네프의 초고속 짜증 소나타를 목격하셨다니! 정말 부러운 경험입니다.. 그런 연주를 또 해달라고 할수도 없는 노릇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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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스킬/그뤼미오의 라이벌 커플 해블러/셰링
클래식 이야기 | 2008년 09월 12일 12시 39분
해블러/셰링 커플은 역사적으로 라이벌이지, 엄밀히 말하자면 하스킬/그뤼미오 커플의 대체재다. 하스킬의 급작스런 죽음은 저 환상 듀엣으로 많은 돈(?)을 벌던 필립스사를 당황하게 했다. 그리하여 그뤼미오와 함께 당시 세계 바이올린계를 양분하고 있던 헨릭 셰링(1918~1988)과 역시 클라라 하스킬 이후 최고의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이자 여성피아니스트였던 잉그리트 해블러(1929~)의 역사적 커플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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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와 누이같이 구수하고 안정된 연주를 보여준 셰링, 헤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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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이들은 모차르트의 모든 바이올린,피아노 2중주 소나타, 베토벤의 모든 2중주 소나타를 음반으로 남기는 등 빛나는 활약을 펼친다. 이들은 각자 솔로연주자로도 맹활약했으며, 또한 셰링의 건강상태가 문제가 된 1980년대 이전까지 듀엣으로도 맹활약했다. 그리하여 아직까지도 이 장르에서는 하스킬/그뤼미오, 헤블러/셰링 짝이 여전히 전범이자 교과서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하스킬/그뤼미오 짝이 감성적이고 표현적인 연주자들끼리의 조합이라면, 원래 모차르트가 아니라 바흐 스페셜리스트인 셰링과, 빅토리아풍 요조숙녀인 헤블러는 단정하고 구조적인 연주자들끼리의 조합이다. 따라서 두 커플은 상당히 대조적인 연주를 보여주며, 같은 음악이 얼마나 다르게 해석될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되었다. 또한 음악적 표현에서 표현과 구조라는 두 축의 가장 좋은 모범으로 꼽히게 되었다. 한 마디로 하스킬 팀 연주가 서정적이고 가슴에 파고든다면, 헤블러 팀 연주는 편안하고 마음을 즐겁게 한다.

또 하스킬 커플은 피아니스트가 연장자, 누나이며, 셰링 커플은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장자, 오빠다. 이 점도 역시 두 커플 연주에서 상당히 다른 소리를 만들어낸다. 전자는 귀여운 남동생 바이올리니스트 그뤼미오가 주도하며, 후자는 어여쁜 누이 피아니스트 해블러가 주도한다. 양자 모두 연장자는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뒤에서 조용히 후배의 활약을 지켜보며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공교롭게 한쪽은 피아노가, 다른 쪽은 바이올린이 균형추 역할을 하고 있으니, 이 역시 상당히 대조적인 연주로 이후 많은 연주자들이 비교, 참고하는 대상이 되었다.

그럼, 이전에 올렸던 하스킬/그뤼미오 의 연주와 비교하기 위해 똑같은 모차르트의 K378번 소나타의 1악장을 헤블러/셰링의 연주로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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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CH2138 2008년 09월 20일 11시 28분
말씀처럼 표현적이고 은은한 시정의 그뤼미오와 달리 셰링은 조촐하고
단아함이 투영되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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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스킬의 친구들 -그뤼미오
클래식 이야기 | 2008년 09월 07일 22시 39분
흔히 바이올린 소나타라고 잘못 불리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2중주는 매우 사랑스러운, 혹은 사랑의 장르다. 잘못 알려진 바와 달리 이 형식은 바이올린이 연주하고 피아노가 반주하는 것이 아니다. 엄연히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2중주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균형잡힌 2중주가 말이 그렇지 쉬운것은 아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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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뛰르 그뤼미오

이 매우 불균형한 상대기 때문이다. 그 음량에서나 음역에서나 바이올린은 피아노의 상대가 아니다. 실상 피아노를 제대로 상대하려면 바이올린, 첼로가 함께 서야 한다. 그래서 피아노트리오가 피아노를 포함한 실내악의 보편적 장르로 자리잡은 것이다. 갸냘픈 바이올린 홀로 거대한 피아노를 상대하려면 피아노의 활약에 그저 추임새나 넣어주거나, 혹은 바이올린을 위해 피아노가 자신의 가능성을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이 2중주는 작곡가의 역량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까다로운 형식이며, 그 결과 초1류급 작곡가의 작품 외에는 거의 살아남지 못한 장르이기도 하다. 이 형식으로 많은 작품을 남긴 작곡가는 모차르트와 베토벤, 그리고 브람스 정도가 있고, 그 외에는 기껏 한 두개의 작품을 남기거나, 남기긴 했으나 무시당하거나 했다.

하지만 작곡가가 훌륭히 밸런스를 맞추었다고 해서, 끝나는게 아니다. 연주자도 또한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단 두명의 연주자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의 실력이 조금이라도 모자라면 금새 균형이 무너진다. 따라서 이 장르는 최고의 작곡가가 작곡한 곡을 최고의 피아니스트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해야만 하는 초절한 장르다. 물론 잘 맞아떨어지면 음악의 극치를 느낄수 있지만, 잘못하면 그야말로 최악을 경험할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장르는 바이올리니스트와 피아니스트 모두에게 크게 부담되는 장르다. 특히 이 장르가 레파토리의 주종을 이루는 바이올리니스트에게는 자신의 짝이 될수 있는 수준급 피아니스트를 확보하는 것이 화급의 과제가 되곤 했다. 하지만 화려한 솔로악기인 피아노에서 최상급의 위치를 가진 연주자가 선뜻 2중주를 하겠다고 나서는 일은 흔하지 않다. 결국 관건은 우정이다. 우정이 없으면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이 장르에 뛰어 들어서 더군다나 장기간 솔로를 접어두고 다른 연주자와 박자를 맞추어야 하는 상황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중주를 해야 함은 서로 자신의 음악관을 상대방의 그것에 맞추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집세기 마련인 음악의 대가들에게는 무척 짜증스러운 일이다. 3중주, 4중주의 경우는 애초에 솔로보다는 앙상블을 전공으로 한 연주자들이 감당하기에 이런 일이 드물지만, 2중주에서는 필히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이 장르는 특히 더 아름다운 장르다. 결국 살아남은 2중주 짝배는 최고의 경지에 이른 두 예술가가 서로 우정으로 뭉쳤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며, 서로 자신의 소신과 고집을 양보했거나, 우연히 서로의 예술관이 일치한 행운을 누렸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역사상 피아노, 바이올린 2중주의 이런 행복한 커플은 얼마 나오지 않았다. 자주 나온다는게 이상한 것이다. 그리고 그 커플 중 최고로 치는 커플이 클라라 하스킬과 바로 아르튀르 그뤼미오 짝이다(물론 해블러, 셰링 짝, 펄만, 바렌보임 짝, 최근의 바딤, 베레조프스키 짝도 훌륭하지만 역시 비교가 되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풍성한 감성을 우아하게 표현할줄 아는 연주자들인데, 현명하게도 연장자인 하스킬은 자신의 표현력을 절제하면서 그뤼미오의 바이올린이 가진 호소력있는 정감을 최대한 살려주면서 완벽한 하모니를 연출한다. 마침 하스킬의 또 다른 베스트 프렌드 게자 안다와 동갑이기도 했던 그뤼미오는 이후 하스킬이 세상을 떠날때까지 늘 무대에 함께 올라 수많은 명연주를 남겼다.

피아노 2대로 연주할때는 게자 안다와, 바이올린으로 연주할때는 그뤼미오와... 디누를 잃은, 가족이라곤 하나도 없던 하스킬이지만, 그녀의 말년은 가히 외롭지 않고 참으로 행복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이 두 친구는 모두 하스킬보다 나중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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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뤼미오와 함께 지낸 하스킬 만년의 행복한 모습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스킬이 남긴 마지막 말도 그뤼미오에 대한 것이었다. “내일 공연은 힘들 것 같구나. 그뤼미오 씨에게 죄송하다고 전해주렴.” ...이것이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이다.

"나는 살면서 진정 천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세 명 만났다. 한 사람은 아인슈타인이었으며, 한 사람은 처칠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 누구보다도 현격히 차이 나는 두뇌의 소유자는, 바로 클라라 하스킬이었다." - 챨리 채플린

하스킬과 그뤼미오가 함께 연주한 모차르트의 소나타 K.378의 1악장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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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CH2138 2008년 09월 20일 11시 30분
그뤼미오는 모차르트에서 발군의 역량을 보인 바이얼리스트로
바흐, 헨델, 텔레만의 음악도 굉장합니다. 하스킬의 피아노도
그 신섬함과 은은함이 심혼을 뒤집듯 다가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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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스킬의 친구들. 디누 그 이후....게자 안다
클래식 이야기 | 2008년 09월 03일 21시 12분

예술가들의 치열한 삶, 우정, 동료애, 그리고 결코 잊지않는 그들의 소명의식은 그 어떤 종교보다도, 혁명적 사상보다도 감동적이다. 어쩌면 그들이야 말로 진정 인류의 구세주이자 대속자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고통을 대신한... 그런 점에서라면 클라라 하스킬은 참 야속하게 살았다. 마치 신이 약이라도 올리듯....

1950년 디누 리파티를 잃어버린 클라라 하스킬은 거의 최악의 외로움과 번민에 허덕인다. 하지만 신은 그녀에게 고통과 희망을 동시에 주며 단련 시키려 한듯하다. 마치 장난이라도 치듯, 하스킬 앞에 젊은 디누를 연상시키는 천재 피아니스트가 또 한명 나타났다. 그는 바로 피아노의 음유시인이라 불리게 될 게자 안다(1921~1976).

헝가리 출신인 게자 안다는 같은 동유럽계이기도 해서 더욱 하스킬에게 친근하게 받아들여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같은 스승에게 배워, 같은 계열의 음악을 한 디누 리파티와 달리 게자 안다는 바르톡, 코다이의 제자였다. 따라서 하스킬이 쇼팽 계보를 이어온 프랑스 피아니즘의 후계자라면 게자 안다는 리스트의 계보를 이어온 헝가리 피아니즘의 후계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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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럼에도 헝가리에서 온 이 샤프한 피아니스트는 그 동안 세밀한 감성에 치중해온 하스킬에게 강철같이 단련된 손가락의 힘을 바탕으로 한 정교한 피아니즘을 선보이며 깊은 감명을 주었다. 반면 게자안다는 기교와 힘만으로는 표현할수 없는 하스킬의 깊이있는 연주에 또한 감명 받는다.

마침내 이들은 1955년 바흐와 모차르트의 두대의 피아노를 위한 작품들을 함께 연주하며 정반합의 새 경지를 이끌어낸다. 하스킬은 안다를 통해 낭만파와 현대음악으로 안목을 넓히고, 안다는 하스킬을 통해 고전파쪽으로 안목을 넓혔다. 마침내 초절한 기교파 연주자였던(당연히 리스트의 후예니...) 안다는 하스킬의 권유와 설득으로 주전공을 모차르트로 바꾸게 된다. 그리고 역사에 길이 남을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전집을 녹음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도 게자 안다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연주는 4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최고의 음반으로 손꼽히고 있다. 안다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음악을 말할때 반드시 첫손에 꼽는 인물이 되었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바로 클라라 하스킬이라는 정신적인 스승이자, 무대 위의 동료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스킬은 안다의 전설적인 모차르트 연주를 듣지 못한다. 안다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녹음은 하스킬이 죽은 1960년 뒤에야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쩌면 하스킬의 죽음이 안다로 하여금 그 작업을 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최고의 모차르트 연주자로 불렸던 클라라 하스킬은 정작 모차르트 음반을 몇장 남기지 못하고 죽었다. 하지만 마치 유언을 집행이라도 하듯, 게자 안다는 바로 이어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연주를 완성했다. 그 과업을 완수한 1976년 게자 안다는 마치 소명을 다했다는 듯이 홀연히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지금 클라라 하스킬 콩쿠르와 게자 안다 콩쿠르가 공교롭게 모두 스위스에서 개최되고 있어, 이들의 우정을 기념하고 있다.

여기에 클라라 하스킬과 게자 안다가 함께 연주한 단 하나의 음반에서 음악을 올려본다. 바하의 두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맑고 유연하고 자연스러운 하스킬의 터치와 정교하고 명석한 안다의 터치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당신의 감식안을 시험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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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10월 13일 20시 25분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wdsf 2009년 10월 13일 20시 25분
fdfdfdf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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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네트 느뵈
클래식 이야기 | 2008년 08월 28일 11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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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에 태어나 1949년, 딱 30년을 살다 간 바이올린의 천재, 지네트 느뵈... 공교롭게도 디누 리파티와 비슷한 시기를 살다가 비슷하게 애석함만 남기고 하늘로 갔다.

16살에 비에냐프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지만, 어린 나이에 현란한 기교를 자랑하는 신동들이야 이후로도 종종 나타났던 바(이를테면 한국계나 일본계의 유니스 리, 이또 미도리 같이...), 정작 지네트의 경이로움은 풍성한 인생의 맛을 알아야 제대로 할 수 있는 깊이있는 곡을 약관의 나이에 놀라운 표현력으로 연주해 냈다는 것이다.

특히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기교적으로 현란한 곡이 아니라서 풍부한 표현력이 없으면 매우 지루하고 평범하게 들리는 곡인데, 지네트는 이를 한 50살 먹은 거장이나 보여줄법한 원훅하고 깊이있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비록 워낙 옛날 판이라 음질은 엉망이지만, 바이올린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느낄 것이다. 25살의 아가씨가 이런 연주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건지...

그래서 시샘한걸까? 16세에 명연주자로 데뷔하고, 25세때 50대의 경지를 보여주고, 30세에 인생을 마감했으니, 이 모든 게 2를 곱해야 정상이 되지 않는가? 남들의 두배를 표출하고 절반만 살다간 지네트....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2악장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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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CH2138 2008년 09월 20일 11시 26분
이냥반이 그 대가인 오이스트라흐를 콩쿠르에서 2등으로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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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르노 '음악사회학' 중 청취자 유형 (펌글)
클래식 이야기 | 2008년 08월 20일 15시 55분
아도르노가 분류한 음악청취유형  


▲ 프랑크푸르트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에는 빈에서 음악에 종사하였으나, 1931년 모교의 철학강사로 취임하였다. 1934년 나치스에 의해 추방되어 미국으로 망명하였다가, 1949년 제2차 세계대전 종료 후 다시 독일로 귀국, 호르크하이머와 함께 사회조사연구소(社會調査硏究所)를 개설하였다. 1950년에 프랑크푸르트대학 철학교수로 취임하는 한편, 파시즘 연구를 주제로 한 《권위주의적 인간(權威主義的人間)》을 간행하는 등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그의 사상은 체계성을 거부하고, 각 이데올로기 영역에 내포된 정신의 변질적 경향을 날카롭게 분석해내는 데 특색이 있으며, 근대문명에 대하여 독자적인 비판을 제시하였다. 또 그는 현대음악의 성격에 대해서도 뛰어난 업적을 남긴 바 있다. 주요저서로는 위에 기술한 것 이외에 《현대음악의 철학》(1949), 《Soziologica》(1962), 《부정적 변증법(否定的辨證法)》(1966) 등이 있다.
1. 18세기의 음악비평가 로흐리츠는 음악회에 참여하는 관중의 청취유형을 넷으로 구분했다. 첫째, 허영과 유행으로 음악을 듣는 그룹, 둘째 음악을 오직 귀로써만 듣는 그룹, 셋째 음악을 오직 이해력으로 듣는 그룹, 넷째 음악을 모든 영혼으로 청취하는 그룹.

2. 베셀러에 따르면 음악작품이 탄생한 시대에 따라 청취유형이 달라진다. 그는 시대적 음악양식과 청취유형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음을 주장하며, 르네상스 음악은 '알아듣는 청취', 바로크음악은 '연관시키는 청취', 고전음악은 '능동적 청취', 낭만음악은 '수동적 청취'를 하게된다고 주장했다.

3. 아도르노는 음악청취 유형을 8가지로 구분하며 이를 사회적 개념으로 정리하고 심리상태와 연관짓는다. 이들 유형은, 구조적 청취유형, 유능한 청취유형, 교양 청취자유형, 감성적 청취유형, 질투 청취유형, 재즈 청취유형, 오락 청취유형, 무관심적이며 비음악적이고 반음악적인 청취유형.

첫째, 구조적 청취유형은 음악을 완전히 적절하게 청취하는 형으로 음악전문가와 직업음악가에게서 나타난다. 그들은 음악의 구성과 논리를 정확히 파악하는 유형이다.

둘째, 유능한 청취유형은 음악의 구성이나 논리는 알지 못하면서도 음악을 이해하는 형으로 음악적인 사람이다. 아도르노는 이러한 유형으로 19세기까지의 유럽 귀족층을 예로 든다.

셋째, 교양 청취자유형은 곡을 완전히 들으려고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아름다운 선율과 같이 그들에게 감동을 주는 단편적인 부분만 듣는 것이 특징이고, 전시효과적 기교에 감탄한다. 이런 태도에 대해 아도르노는 이를  '물신숭배적'인 청취라 규정한다.

넷째, 감성적 청취형은 음악을 평소에 억눌렀던 감정의 표출을 위한 도구로 삼는 유형으로, 이들에게 음악이란 자신의 불안한 정서를 부어넣을 그릇이나 다름 없으며, 음악과의 일치감을 통해 자신에게 결여된 정서를 얻고자 한다.

다섯째, 질투 청취유형은 감성적 청취유형과 정반대의 유형으로, 주로 바흐와 그 이전시대의 작품들을 들으며, 루바토나 장식음 등이 지나치게 들어간 감상적인 연주를 철저히 배격하는 금욕주의적 성향을 보여준다. 아도르노에 의하면 그들은 스스로 끊임없이 금지해야하는 행동에 대한 피학증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피학증은 그들의 필수조건으로서, 이 집단은 집단적 억제 성향을 보여준다.

여섯째, 재즈 청취유형은 고전과 낭만음악을 혐오하고 공인된 문화에 저항하며 파벌을 이룬다는 점에서 질투 청취유형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아도르노에 의하면 음악을 본래 다이내믹하게 자유로이 전개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무능력이 이 청취유형의 성격이라 규정했다. 반면 이 유형은 프로이드적 의미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갖고 아버지에게 반항아면서도 그에게 굴종할 준비도 되어있다.

일곱째, 오락 청취자유형은 양적으로 가장 많은 청취유형으로 음악을 오직 오락으로 청취한다. 이들에게 음악은 의미관계가 아니라 자극이다. 자의식이 약하고 수동적인 청취자들이 이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여덟째, 무관심하며 비음악적이고 반음악적인 청취유형은 타고난 소질 부족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초년기의 가정에서 난푹스러운 권위를 경험했을 때 나타날 수 있다. 이들 유형은 지나치게 격정적이고 현실적인 성향과 연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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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누가 연주한 쇼팽 협주곡
클래식 이야기 | 2008년 06월 28일 13시 18분
쇼팽의 피아노협주곡 1번은 사실은 2번보다 나중에 쓴 곡입니다.
천가지 정서와 천가지 슬픔, 그리고 천가지 기쁨이 담겨있는듯한 곡입니다.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이 곡을 자신의 레파토리에 넣었지만, 이 곡의 그 엄청난 표현적 잠재력을 끝까지 끌어낼만한 피아니스트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이런 깊고 풍성한 작품을 들음으로써 미적 감수성을 예민하게 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아도르노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문화자본에 의한 세계의 화석화를 막아세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민중의 깃발이 어쩌고"하는 가사로 유행가 가락을 불러대는 사이비 민중음악가들 보다, 인간의 고귀한 마음을 극한까지 표현할 수 있는 디누와 같은 연주자, 쇼팽과 같은 작곡가가 더 진보적이라는 생각도 문득 가져봅니다. 급진적... radical, 뿌리로 돌아가는 것... 클래식은 급진적인 음악입니다.

매우 긴 곡이라 전곡을 올리지는 못하고, 2악장과 3악장만 올려봅니다. 특히 2악장이 압권입니다. 이 느리면서 서정적이면서 풍부한 감성의 2악장은 "카멜리에의 여인"이라는 발레 음악으로도 사용되어 더욱 애잔합니다. 물론 워낙 옛날 녹음이라 소리가 잡음이 심하지만 디누의 고통과 싸우는 열연을 느끼기에는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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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누의 마지막 공연중 쇼팽 왈츠 몇곡
클래식 이야기 | 2008년 06월 18일 10시 18분
디누 리파티의 마지막 공연이었던 브장송 공연의 마지막은 쇼팽의 왈츠였습니다. 그런데 디누는 왈츠들을 번호 순서대로 연주하지 않고 자기 나름 재구성한 번호 순서대로 연주했습니다. 그러니 쇼팽의 왈츠들을 재구성해서 디누의 작품을 하나 만들어 낸 것이죠. 그렇게 마지막 연주가 끝났을때 디누는 인사를 잊었고, 청중은 박수를 잊었습니다.

버벅거리는 녹음이라 완전치는 않지만, 그 광경을 떠올리며 디누가 연주한 쇼팽의 왈츠 몇곡을 올려봅니다.

그리고 틈틈히 나머지 왈츠들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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