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사색이 있는 공간 방명록  |  위치로그  |  태그  

음악을 사랑하고 생각을 즐거워 하는 아이들을 기르고 싶은 교육자의 소박한 공간입니다


전체 (60)
모차르트 (6)
클래식 이야기 (21)
오페라이야기 (2)
록 이야기 (11)
철학 한 토막 (14)
내가 읽은 책들 (3)

«   2009년 11월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바이올린소나타믿음화이트헤드좌파포크송가치의전복엘비스쾌락주의아도르노코지판투테모차르트음악게자안다키리에음악사문명실용괴테중용복음주의음악감상독일철학아뉴스데이진보사상그뤼미오파괴비평예술클라라하스킬레인보우근본주의고통과예술브루스스프링스틴포크정체성루소교섭청중매너연주의무론라틴아메리카다중피노체트오페라마술피리파파게노미사음악미학자유의지Thunderroad도덕법칙부정변증법

TOTAL 40411
YESTERDAY 53    TODAY 85

RSS
얄미운 천재 미하일 플레트네프
클래식 이야기 | 2008년 09월 16일 22시 26분
디누 리파티 이후 그의 포스를 대체할만한 피아니스트는 나오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EMI에서 짝퉁 디누리파티 음반을 발매하다 걸려서 망신을 당했을까? 그러나 20세기 후반이 다 되어서야 그런 포스를 가진 피아니스트를 다시 만나게 되는데, 바로 미하일 플레트네프다.

2005년의 일이다. 6년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미하일 플레트네프의 피아노 독주회를 갔다. 6년 전에 공연 도중 기침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짜증을 숨기지 않은 이 성격 까다롭고 민감한 천재는 공연 시작하기 전 부터 그 성깔을 유감없이 드러내었다.

공연 시작한 다음에 뒤늦게 들어오기 일쑤인 몰지각한 청중을 의식해서 아예 공연시간을 20시로 30분 늦추었다. 그리고 신경 거슬리는 기침소리들을 의식해서 악장과 악장 사이에 전혀 인터벌을 두지 않고 연주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의 연주는 한 마디로 연습해서 할 수 있는 연주가 아니었다. 첫번째 곡목인 베토벤의 7번 소나타. 1악장에서는 마치 수학공식처럼 피아노 소리를 정교하게 재구성한 그는 2악장에서는 폐부를 찔러대는 깊은 정서로 노래했다. 그리고 3악장에서는 미뉴엣이 단지 춤곡이 아님을 증명했고, 4악장에서는 프레스토 템포로도 여유있게 노래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그런데 그 다음 순간 사단이 일어났다. 원래 공연에 늦으면 인터미션때 입장해야 하고 1부 공연은 포기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우리나라에서는 1부 첫번째 순서가 끝나면 입장을 시킨다. 그 순간의 어수선함은 정말 화가날 정도다. 이는 나 뿐 아니라 플레트네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7번 소나타의 마지막 악장이 끝나고 당연히 박수가 나와야 할 상황인데 그는 1초의 짬도 두지 않고 바로 8번 소나타 연주를 시작했다. 중간입장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그런데 몰지각한 홀 매니저가 입장을 시켜버렸다. 이제 큰 일이 났다. 저 성질 까다로운 천재가 연주를 하고 있는 상황인데 무려 200여명이나 되는 지각생들이 우르르 입장하고, 구두소리를 딸깍이고 휴대폰 소리를 냈던 것이다.

일이 벌어졌다. 피아노, 지휘, 작곡 세 분야에서 세계 정상을 지키고 있는 가히 음악계의 황제라 할 만한 그리고 그런 만큼 겸손함을 전혀 미덕이라 생각하지 않는 오만한 천재가 웅성거리며 서성대는 청중들 사이에서 연주해야하는 기막힌 상황에 처한 것이다. 내심 나는 저 예민한 인물이 화를 버럭내며 연주를 중단하고 퇴장하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실제 그의 얼굴에는 짜증과 분노가 가득했다. 그러나 그는 그 짜증과 분노를 엉뚱하게 표현했다. 바로 연주로!

그가 연주한 베토벤 8번 소나타는 여태까지 들었던 그 어떤 연주보다 빨랐다. 프레이징은 기존의 정석과 너무나 동떨어졌고, 터치 하나하나마다 짜증이 느껴졌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짜증과 분노를 연주했다. 사실 그 순간 플레트네프는 한시라도 빨리 이 몰지각한 청중 앞에서 연주해야 하는 상황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 외에는 전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방법은 단 하나 빠른 템포로 가볍게 연주하는 것. 정상 속도보다 1.5배 빠르게 연주하는 베토벤 8번 소나타는 '비창'이 아니라 '짜증'으로 닉네임이 바뀌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분명 플레트네프는 짜증스런 상태에서 한시라도 빨리 연주를 끝내려고 가벼운 터치로 빠르게 연주했다. 그런데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새로운 해석으로 들리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에는 일점 반획의 오차도 없었고, 밸런싱과 프레이징은 완벽했고, 심지어는 자신의 짜증마저 표현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천재로 태어난 자의 비운이다. 천재의 정서는 표현되는 순간 사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인 표현이 되어버린다. 화를 내던 슬퍼하던, 짜증을 내던, 공포를 느끼던, 그것이 표현되는 순간, 일반인들은 그것을 감상한다. 화를 내면 그 격렬함의 파도를 즐기고, 슬퍼하면 그 비극적 정서를 즐긴다. 불행히도 일반인은 천재의 즐거움이란 정서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바로 저 플레트네프의 짜증처럼 천재의 부정적인 정서를 좋아한다.

그의 짜증은 정말 경이로웠고 또 아름다웠다.

그리고 2부... 쇼팽의 24개 전주곡을 연주한 2부는 너무도 훌륭한 연주였기에 따로 서술하지 않겠다. 그리고 몰지각한 청중들이 시계를 보며 미리 퇴장해 버린 다음 커튼콜을 계속하고 있는 진짜배기 청중들에게 선사한 기나긴 앵콜 공연에서 보여준 그의 연주는 전율스러웠다.

아마도 피아노 공부하는 사람에게 미하일 플레트네프라고 하는 이름은 영원한 저주이자 경외이자 증오의 대상이 될 것이다.

참고로, 그는 두시간에 달하는 공연 내내 단 하나의 미스터치도 범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한국에 도착 한 뒤 단 한번도 연습이나 리허설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단하다 못해 얄미운 존재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제 50대가 된 플레트네프는 피아노에 손을 잘 대지 않는다. 이제 그는 지휘자가 되었다. 에셴바흐에 이허 또 한명의 아까운 피아니스트가 지휘대에 흡수되었다. 대체 왜들 그러는지. 쩝.
여기서 플레트네프의 연주 한 자락. 차이코프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의 3악장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트랙백1 | 댓글2
, , , , , , , ,
트랙백주소 : http://dinu.hosting.paran.com/trackback/49

좋아하는 음악가들이 언급되어서...
Tracked from: 김너굴네 집 2009년 02월 18일 05시 56분

 BlogIcon 저녁놀 2008년 10월 16일 13시 20분
스토리가 너무 재미있네요. 티스토리에 스크랩을 어떻게 하는지 잘 몰라서...
출처 밝히고 퍼갑니다. 원치 않으시면 바로 내려드릴께요.
사실 전 베토벤바이러스 => 노다메칸타빌레 =>피아노 협주곡=>라흐마니노프
이렇게 연결연결 하다보니 어찌하다 미하일의 피아노 영상을 보게 되었고...
궁금해서 찾아보다 이런 스토리를 보게 되었네요...
남편이 런던있을 때 명반 산다고 어쩌고 저쩌고 하며 돌아다닐때는
관심도 없었는데... 암튼 좋은글 감사해요
 pastcloud 2008년 12월 05일 19시 21분
역시나 한치의 오차도 없는 깔끔,정밀,세련된 음악이네요. 플레트네프의 초고속 짜증 소나타를 목격하셨다니! 정말 부러운 경험입니다.. 그런 연주를 또 해달라고 할수도 없는 노릇이고~^^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1] ... [14][15][16][17][18][19][20][21][22] ... [60]

블로그를 열면서(7)
블로그를 이전합니다.
클라라 하스킬의 특별한..(1)
음악의 신성함에 대하여(1)
음악에세이 -테초에 소리..
음악에세이 -태초에 소리..
용기에 대하여(아리스토..(2)
괴테, 들장미, 그리고 슈..
굴드 음반의 복제, 그리..
음악의발생학 -태초에 소..
이렇게 살면 행복할까(1)..
글렌 굴드 vs 컴퓨터(5)
태초에 소리가 있었다-..
음악, 그 존재론적 모순..(2)
음악, 그 존재론적 모순(1)
코지판투테를 보는 어린이
음악에세이 1 -음악과 음..(1)
얄미운 천재 미하일 플레..(2)
사르트르 "실존주의란 무..
하스킬/그뤼미오의 라이..(1)
0

fdfdfdfdf
10월 13일 - wdsf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
10월 13일 -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
2008년 -
네. 몇몇 연주를 더 올려..
2008년 - 디누리빠띠
문제라뇨.. 얼마든지 스..
2008년 - 디누리빠띠
클라라 하스킬에 대해서..
2008년 - 로사
고통중에 검색을 하다가..
2008년 - 나그네
역시나 한치의 오차도 없..
2008년 - pastcloud
결정적으로 굴드의 흥얼..
2008년 - Sid S. Jeong
그런 의미라기 보다는 무..
2008년 - 주인장
용기란 두려움과 태연함..
2008년 - 김태경
스토리가 너무 재미있네..
2008년 - 저녁놀
의도야 뭐 보나마나, 요..
2008년 - 디누리파티
맞습니다. 말씀처럼, 정..
2008년 - BACH2138
기가 막힌것은 본문에도..
2008년 - 디누리파티
굴드 팔아먹는 상술의 연..
2008년 - BACH2138
올려주시는 음악 잘 듣고..
2008년 - 발가락
모순일수 밖에요. 아무리..
2008년 - 디누리빠띠
플라톤과 피타고사스 대..
2008년 - 둥근사각형
좋은 글이군요.... 클래..
2008년 - BACH2138

좋아하는 음악가들이 언..
김너굴네 집
Shine A Light, 구르는..
소년의 눈, 소녀의 귀

교육운동 네트워크
교육을 바꾸자, 학교를 바꾸자
아름다운 교육



믹시